[현장] “여기가 거기… 사격하는 거야?” 700여 예비군 불안한 수군거림

입력 2015-05-20 02:20

"여기가 총 쏜 그 부대야?"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의 사망자 윤모(24)씨 영결식이 열렸던 18일 오전 서울 내곡동 강남·서초 예비군훈련장(211연대)에 예비군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훈련 통지를 받은 국민일보 고승혁 기자도 신분증을 들고 입소 절차를 밟았다. 이곳은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진 송파·강동 훈련장(210연대)과 출구만 다를 뿐 서로 연결돼 있다. 교장(敎場)도 같이 쓰는 '쌍둥이' 훈련장이다. 사건 당시 210연대에서 훈련받았던 예비군들도 일부 동원훈련을 이곳에서 받았었다.

이날 6시간 향방작계훈련을 위해 모인 예비군들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었다. 호루라기를 어깨에 단 조교와 굳은 표정의 동대장이 부대 입구에 서서 말없이 손짓만으로 안내를 했다. 700여명이 운동장에 도열했다. “여기가 거기 맞죠?” “오늘 사격하는 거야?” 웅성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사열대에 선 한 동대장은 “다들 아시다시피 얼마 전에 사고가 있었지 않느냐”며 “오늘 시가전 훈련을 하면서 페인트탄을 쏘게 될 텐데 다들 안전에 각별히 조심하자”고 말했다.

움츠린 마음 앞에서 농담은 통하지 않았다. 오전 10시30분 고무로 된 수류탄을 만지작거리던 한 예비군이 “이거(수류탄) 터져서 우리 다 죽는 거 아냐”라고 농을 던졌지만 무거운 침묵만 가득했다. 부대 측은 모형을 사용하는 지뢰매설 훈련을 안전교육으로 대체했다. 교관은 “예방이 제일 중요하다”며 소화기 소화전 등 안전장비 사용법을 교육했다. 인공호흡법도 강의했다. 한 동대장은 “지난주 총기사고가 일어난 뒤 ‘훈련을 미룰 수 있느냐’는 전화만 하루에 30∼40통씩 받았다”고 전했다.

구조물 전투 훈련장에서 M-16 소총을 들고 사격 시늉을 하던 이모(28)씨는 “사고 소식을 듣고 훈련을 미룰까 고민했지만 며칠 지나니 어쩌다 한 번 일어난 사고라는 생각이 들어 그냥 왔다”고 말했다. 군은 송파·강동 예비군훈련장을 관리하는 52사단의 예하부대에서 이뤄지는 예비군 사격훈련을 모두 중단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19일 “사격훈련 대신 사격 이론교육이나 실탄 없이 진행하는 격발훈련으로 대체했다”고 밝혔다.

예비군 훈련장에선 정부가 발표한 안전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국방부는 각 사로에 1대 1로 조교 배치, 총기 안전고리 운영 등을 골자로 한 대책을 내놓았다. 한 부대 관계자는 “한 연대에 조교가 30명뿐이라 현재 병력 상황으로는 (국방부 안전대책의) 현실성이 없다”며 “사격하는 예비군 1명마다 조교 1명이 배치된다면 병력의 60∼70%가 사격 훈련에만 매달려야 한다”고 말했다.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했던 210연대 사격장에는 ‘접근금지’라고 적힌 노란색 띠가 그대로 드리워져 있었다. 시멘트로 된 사격장 바닥은 곳곳에 핏자국이 붉은 점처럼 찍혀 있다. 5사로 앞은 마른 피가 덕지덕지 굳어 있고, 총상을 입고 숨진 박모(24)씨가 있었던 3사로 앞에는 피에 물든 솜뭉치가 흩어져 있었다. 현장감식을 위해 칠한 하얀색 페인트 자국이 전투화, 방탄 헬멧, 그리고 예비군들이 쓰러져 있던 자리를 알려줬다.

훈련은 예정보다 1시간 정도 이른 오후 2시쯤 끝났다. 예비군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서둘러 부대를 빠져나갔다. 1948년 창군 이래 처음 발생한 예비군 총기난사 사건은 성실하게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이들의 마음에 씁쓸한 상처만 남겼다.

양민철 고승혁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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