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면피 고위 공직자들… 하도급 대가 에쿠스 받고 무이자로 3억 빌려 돈놀이

입력 2015-05-20 02:57

“신경 써 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대한주택보증㈜ 팀장 A씨는 2008년 9월 건설업자를 통해 B씨를 소개받는 자리에서 전기공사를 하도급받도록 해 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다. 이듬해 8월 A씨는 B씨로부터 에쿠스 리스 차량을 제공받았지만 B씨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 B씨가 항의하자 A씨는 2년간 공짜로 타던 리스 차량을 돌려줬다. 이 기간 리스 비용은 6149만원이었다.

미혼인 A씨는 감사원 조사에서 “선 자리에서 멋지게 보이도록 해 주기 위해 마련해준 차량을 고마운 마음에 받은 것일 뿐”이라고 둘러댔다. A씨는 B씨를 소개해준 건설업자의 회사에 자신의 아버지를 사내이사로 등재하고 아버지 명의로 6000만원 상당의 이 회사 주식을 받은 사실도 드러났다.

경북성주교육지원청 전 과장 C씨는 2013년 1월부터 2014년 7월까지 건축업자 등으로부터 3억2500만원을 무이자로 빌렸다. 빌린 돈을 ‘친분’이 있는 건설업자에게 연 20%의 이자로 다시 빌려주는 등 ‘돈놀이’를 해 400만원을 챙겼다.

감사원은 A씨와 C씨를 각각 면직, 파면 처분하도록 해당 기관에 요구하는 등 ‘고위 공직자 등 공직 비리 기동 점검 및 주요 취약분야 점검’ 결과를 19일 공개했다. 이들을 포함한 14명에 대해 징계 요구를, 7명에 대해선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감사원 조사에선 공공기관 직원들의 이권 개입 행위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감사원에 따르면 김포도시공사 팀장 D씨는 2014년 8월 김포 신곡 7지구 도시개발사업 과정에서 공사를 수주하도록 해주는 대가로 철거업자로부터 1000만원을 받았다. 경기도 이천시 공무원 3명은 2013년 26억4000만원 규모의 괸돌천 수해복구공사와 관련해 특정 업체에 6억3000만원 규모의 하도급을 주도록 특혜를 제공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 간부 E씨는 지난해 1월 징계 대상자 5명의 징계 절차를 미뤄 이들 중 2명이 부당 승진하도록 했다. 한국토지주택공사는 지난해 9월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끝내지도 않은 채 경기도 이천시에 군 골프장 공사를 진행하다가 환경부로부터 공사중지 명령을 받기도 했다.

교육공무원의 비리 행태도 심각했다. 충북교육청 공무원 2명은 2012∼2014년 충북체육고등학교 신축 공사 시공업체를 상대로 특정 업체에 하도급 공사를 주도록 압력을 넣었다.

검찰은 또 감사원 조사에서 적발된 법제처 한모 국장을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로 지난달 불구속 기소했다. 한 국장은 대형 로펌과 변호사, 대학교수, 대학 산학협력단 등으로부터 법률안 검토 용역 자료를 자문해주는 대가로 9400여만원을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