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가 품은 비밀의 숲, 제주 곶자왈도립공원

입력 2015-05-21 02:11
제주도 서귀포시 대정읍 신평리 일대 ‘제주곶자왈도립공원’. 과거 불모지나 다름없던 곶자왈이 생태숲으로 부각되면서 찾는 이들이 크게 늘고 있다.

한 때는 활용가치가 떨어진 땅이었다. 농사를 짓지 못해 방목지로 이용되거나 땔감·숯을 얻고 약초 등의 식물을 채취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최근 생명의 땅으로 부각되면서 찾는 이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제주도 ‘곶자왈’ 얘기다.

곶자왈은 ‘곶’과 ‘자왈’이 합쳐진 고유 제주어이다. 곶은 숲을 뜻하며 자왈은 ‘나무와 덩굴 따위가 마구 엉클어져서 수풀 같이 어수선하게 된 곳’으로 표준어의 ‘덤불’에 해당한다. 넓은 암석지대에 바위 사이로 뿌리를 내린 풀과 나무가 만들어 낸 환상적인 숲이다. 주로 해발 200∼400m 안팎의 중산간지역에 위치해 있으며 면적은 113.3㎢로 제주도 전체 면적의 약 6.1%를 차지한다.

제주도는 2011년 서귀포시 대정읍 보성·구억·신평리 일대 150만여㎡를 ‘제주곶자왈도립공원’으로 지정·고시했다. 5년간의 생태공원 준비작업을 마치고 올 하반기부터 운영을 시작한다.

이 곳에 들어서면 돌, 나무, 풀들이 뒤엉켜 야생의 별천지를 형성한 모습이 신비감을 더해 준다. 온대와 난대 식생이 어울려 상상을 초월하는 숲을 펼쳐놓는다. 이질적인 두 식물이 어떻게 한 데 어우러져 있을까. 독특한 제주도의 지형 덕이다. 화산 분출 시 점성 높은 용암이 흐르다 굳어지고 다시 쪼개져 크고 작은 바위 덩어리가 됐다. 이런 지형은 보온과 보습효과가 뛰어나 두 종류의 식물이 잘 버틴다. 이런 형태의 숲은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물다.

하늘을 덮은 원시림은 한 줄기 빛을 겨우 허락한다. 녹색이끼를 뒤집어 쓴 크고 작은 바위가 숲의 주인이다. 바위틈을 메운 고사리와 관중 등 양치식물이 초록 덮개를 만들고, 덩굴식물은 나무를 감아 타고 하늘로 치솟는다. 나무는 크고 작은 바위를 움켜쥐고 제멋대로 가지를 뻗어 온통 돌덩이 뿐인 척박한 땅에 제 생명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다. 나무 몸통에는 온갖 착생식물들이 붙어 자란다. 50여종의 동식물이 이 숲에 몸을 붙이고 산다.

숲에 남아 있는 잣담은 정겨움을 더해 준다. 소나 말이 깊은 숲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돌멩이를 겹으로 쌓아 만든 담이다. 놀랄 만한 장쾌한 풍경은 적지만 가슴에 여운을 오래 남기는 것들이다.

생명의 신비감을 느끼며 숲 속을 여유롭게 거닐다보면 어느새 전망대에 닿는다. 가슴 뻥 뚫릴 풍광은 이곳에서 만난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곶자왈은 신록의 바다나 다름없다.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어진 숲 너머로 한라산, 산방산이 펼쳐져 보인다. 전망대 바로 옆에는 과거 방목장으로 사용될 당시 소와 말들의 생명수였던 ‘우마급수장’이 있다. 급수장도 각종 생명체들을 품고 있다. 우마급수장은 빌레(평평하고 넓은 바위)위에 만들어져 한 여름에도 마르지 않는다. 빌레는 점성이 낮은 묽은 용암이 흘러내리면서 부풀어 올라 만들어진 독특한 지형이다.

숲길 곳곳에는 제주의 역사도 숨어 있다. 제주 4·3항쟁 당시 마을 주민들이 만들어 놓은 석축과 참호 등이 길 곳곳에 그대로 남아 있다.

제주도와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JDC), 주민들의 협의체는 당초 계획했던 200m 길이의 ‘스카이워크’를 취소했다. 자연 훼손의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신평분교장을 곶자왈 도립공원과 연계한 생태학습장으로 활용하는 안을 추가해 교육기능을 강화했다. 지금도 곶자왈 입장은 가능하지만 도립공원은 7월 시범운영을 거친 뒤 내년부터 본격 개장한다.

도립공원 내 길 전체 길이는 6.9㎞다. 오찬이길(1.5㎞), 빌레길(1.5㎞), 한수기길(0.9㎞), 테우리길(1.5㎞), 가시낭길(1.5㎞) 등 5개 길이 서로 연결돼 있다. 2시간가량이면 둘러볼 수 있는 코스다.

제주도에는 한경-안덕, 조천-함덕, 애월, 구좌-성산 등 네 곳의 큰 곶자왈 지대가 있다. 20여년 전만해도 곶자왈은 대수롭지 않게 여겨졌다. 그냥 쓸모없는 공간이라 치부된 것이 역설적이게도 동물과 식물의 보고(寶庫)가 됐다. 특별한 생태적 가치가 인정되면서 이젠 아주 후한 대우를 받고 있다.

제주=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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