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드디어 칼을 빼들었다. 현 정부 경제민주화 정책의 핵심인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착수한 것이다. 총수일가 지분율이 현저히 높고, 광고 및 정보기술(IT) 분야 등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 ‘땅 짚고 헤엄치기’식 수익을 올리는 계열사가 1차 타깃이다. 그러나 삼성·현대차 등 10대 그룹 주요 대기업 계열사들은 인수·합병(M&A) 등의 방법으로 규제 대상에서 이미 빠져나가 ‘대어(大魚) 놓친 조사’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공정위, 혐의 확실한 계열사부터 ‘각개격파’식 조사=19일 공정위 등에 따르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계열사는 180개 안팎이다. 자산 5조원 이상 대기업 계열사 중 총수 일가 지분이 30% 이상(비상장사는 20%)인 회사가 규제 대상인데, 공정위는 지난해 4월 기준으로 187개사가 이에 해당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후 1년간의 유예기간 동안 규제 대상 계열사 중 일부는 M&A, 지분매각 등의 방식으로 지분을 낮춰 법망을 빠져나갔다. 공정위는 본격적인 규제가 적용된 올해 기준 대상 계열사를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숫자 면에서 지난해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공정위 관계자는 “빠져나간 기업도 있지만 1년 새 새로 규제 대상에 편입된 계열사가 있어 규제 대상 기업 수는 큰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규제대상 계열사 발표 이후에야 본격적인 현장조사에 착수할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과 달리 지난 18일 한진그룹 계열사 ‘싸이버스카이’에 대한 전격적인 현장조사를 실시했다. 이 회사는 조양호 회장의 3남매가 지분을 사이좋게 나눠 가져 총수일가 지분율이 100%다. 한진그룹 내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으로 꼽히는 5개 계열사 중 유일하게 총수일가 지분이 100%인 회사기도 하다. 이 회사는 한진과의 내부거래 비중이 매출액의 80%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한진그룹에 이어 조사 대상으로 꼽히는 2∼3개 대기업 계열사 역시 총수일가 지분율이 100%인 회사들이다. 이 중 한 IT 계열사는 1000억원대 매출액 중 800억원가량이 내부거래였다.
공정위는 한날한시에 동시다발적인 현장조사 방법 대신 각개격파식 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전해졌다. 어려운 경제 여건에 경제 활성화에 역행한다는 역풍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10대 그룹은 무풍지대?=현대차는 지난 2월 핵심 계열사 글로비스의 총수일가 지분 14%를 블록딜(시간외 대량매매) 방식으로 매각해 지분율을 29.99%로 만들었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시행 직전 총수일가 지분율을 30% 밑으로 떨어뜨려 규제 대상에서 빠진 것이다. 삼성도 2013년 이재용 부회장 지분이 45.7%에 달했던 삼성SNS를 삼성SDS와 합병하면서 지분율을 희석시켰다. 합병 이후 이 부회장의 삼성SDS 지분율은 11.25%로 규제 대상이 아니다. SK그룹 역시 지난달 규제 대상이던 SK C&C의 총수일가 지분율을 크게 낮췄다. SK㈜와 합병해 총수일가 지분율이 43.45%에서 30.9%로 낮아졌다. 언제라도 마음만 먹으면 규제 대상에서 빠져나갈 여지를 만든 셈이다. 공정위 조사 타깃이 된 중견 대기업들은 이를 두고 형평성을 문제 삼고 있다. 이에 공정위 관계자는 “법안에 30%라는 기준이 정해진 이상 그에 따라 집행할 수밖에 없다”며 “1년간의 유예기간을 줬는데 더 이상 기업들에 준비할 시간을 줄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세종=이성규 윤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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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감 몰아주기 조사 본격화… 5조 이상 대기업 계열사 180여개가 규제 대상
입력 2015-05-20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