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만에 주식시장의 가격제한폭 확대가 이뤄진다. 기업가치가 제대로 평가받는 시장 환경을 만들려는 조치지만, 개미(개인투자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인 공매도(주가 하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빌려서 판 뒤 주가가 떨어지면 사들여 차익을 얻는 것) 규제 강화안은 아직 마련되지 않아 개미들의 우려가 크다. 한국거래소는 “세계 최고 수준의 가격안정화 장치를 통해 주가 급변으로 인한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며 투자자들의 우려를 잠재우려 애를 쓰고 있다.
◇“3중 가격안정화 장치 있으니 걱정 없다”=거래소는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의 주권, 주식예탁증서(DR), 상장지수펀드(ETF), 상장지수증권(ETN), 수익증권의 가격제한폭을 다음 달 15일부터 ±15%에서 ±30%로 확대한다고 19일 밝혔다. 코넥스시장은 현행 ±15%가 유지된다. 파생상품시장은 현재 상품별로 ±10∼30%인 가격제한폭이 3단계에 걸쳐 ±8∼60%로 확대된다.
유가증권시장의 가격제한폭은 1998년 12월 ±12%에서 ±15%로 늘어난 뒤 7년 만에, 코스닥시장은 2005년 3월 이후 10년 만에 확대되는 것이다. 가격제한폭 제도는 시장 안정에는 도움이 되지만, 가격변동 가능성을 인위적으로 제한해 균형가격 형성을 지연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김원대 거래소 유가증권시장본부장은 “이번 조치로 가격 발견 기능이 강화돼 시장 효율성이 증대되고, 상·하한가를 이용한 불공정거래 행위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인위적으로 상한가를 만들어 추가 상승을 기대하게 한 뒤 다음날 주가가 오르면 주식을 매도하는 ‘상한가 굳히기’, 부실징후 기업 주식을 대량 보유한 사람이 하한가를 풀고 호재성 자료를 퍼뜨려 투자자를 유인한 뒤 주식을 처분하는 ‘하한가 풀기’ 등의 시세조종이 ±30% 제한폭에선 투하자본 부담 때문에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얘기다.
그러나 재료가 주가에 반영되는 속도가 빨라져 하루에 최대 60%의 수익을 거두거나 그만큼의 손실을 보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거래소는 가격안정화 장치들을 마련했다. 개별종목 차원에선 지난해 9월 도입한 동적 변동성완화장치(VI)에 이어 정적 VI를 추가했다. 직전 단일가격을 기준으로 10% 이상 가격이 급변하면 2분간 냉각기간을 부여하는 것이다. 시장 전체 차원에선 서킷브레이커(매매 일시정지) 제도를 강화한다. 지수가 10% 하락하면 20분간 거래가 중단되던 것에서 지수 하락 단계별(8, 15, 20%)로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되는 것으로 바뀐다. 김 본부장은 “가격제한폭에 VI, 서킷브레이커까지 3중의 안정화 장치를 운영하는 국가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강조했다.
◇“공매도가 주가폭락 촉발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개미들이 고대하는 공매도 공시 강화 방안은 국회에서 표류 중이다. 가격제한폭이 확대되면 공매도 세력에 의한 투자자 피해가 가중될 것이란 우려에 대해 거래소는 “현재 가격 이상으로만 주문을 내야 하는 공매도의 특성과 한정된 공매도 물량을 감안할 때 공매도가 15% 이상 가격 폭락을 촉발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반박했다.
최근 ‘가짜 백수오’ 사태로 내츄럴엔도텍 주가가 요동친 것을 놓고 상·하한폭 확대에 따른 시장 혼란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대해 거래소는 “시장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매매 제도를 예외적 사례를 기준으로 설계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이유 없이 급등락하는 테마주, 기업 비리, 주가 조작 같은 예외적 요인 때문에 거래 환경을 선진화하는 작업을 미루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투기적 매매가 늘어 시장 변동성이 커질 것이란 전망과 관련해선 과거 가격제한폭 확대 시 주가변동성이 축소된 점을 들면서 “건전한 변동성은 확대되고 비합리적 변동성은 억제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가격급변 가능성이 큰 코스닥 중소형주의 경우도 “과거 데이터 분석 결과 특별히 변동성이 높진 않았다”며 VI로 주가급변에 대응할 수 있다고 자신했다. 또 단타 매매가 기승을 부릴 것이란 우려는 “투자자 간 정보 비대칭성 축소로 단타 매매가 감소하는 경향을 감안하면 지나친 걱정”이라고 일축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대박 노렸다가는 쪽박 ‘개미’들은 겁난다… 주식 가격제한폭 확대 안팎
입력 2015-05-20 02: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