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수사·치안 표방’ 남대문경찰서 정문에 혈세로 해치상 설치가 웬 말

입력 2015-05-20 00:13
지난 16일 서울 남대문경찰서 정문 앞을 지나는 시민이 해치상에 적혀 있는 문구를 읽고 있다. 오른쪽은 남대문경찰서 경찰들이 ‘치안은 과학이며 전략이다’라고 쓰인 액자 밑에서 담소하는 모습.

서울 남대문경찰서 정문 좌우에 있는 2m 높이의 ‘해치(해태)상’이 논란을 빚고 있다. 받침대 위에 웅크려 앉은 채 웃고 있는 모습의 해치상은 액운(厄運)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2010년 6월 서울시가 기증해 남대문경찰서 앞에 설치됐다. 교계에서는 상상 속에서나 존재하는 해치를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 경찰서 앞에 전시한 것은 미신을 조장하는 행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심만섭 한국교회언론회 사무국장은 1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과학수사를 표방하는 경찰이 이런 상징물을 마치 믿기라도 하는 듯 국민 세금으로 세웠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미신적 상징물을 즉각 치워 국민에게 경찰의 위상을 높이고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주문했다.

서재생 서울대현교회 목사는 “경찰서에 해치상을 설치한 것은 한국역사와 문화의식이 얼마나 부재한지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도파주기독교총연합회장 신용호 목사는 “민중의 지팡이로 불리는 경찰들이 미신을 부추기는 상징물을 설치했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고 말했다.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해치상은 서울시가 기증한 것”이라며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정의와 청렴의 상징물로서 경찰에 어울린다고만 여겼을 뿐 그 속에서 주술적인 의미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해치는 중국 문헌 ‘이물지(異物紙)’에 나오는 상상의 이미지로 선과 악을 간파해 정의를 지키며 화재나 재앙을 물리치는 동물로 묘사돼 있다. 이 때문에 조선 시대에는 경복궁의 광화문 앞과 근정전의 처마 마루 등 궁궐 곳곳에 해치상을 설치했다. 해치는 2008년 서울시의 상징물로 선정됐다. 해치문양을 부착한 ‘해치택시’를 비롯해 광화문광장에 해치공원을 만드는 등 서울시 곳곳에 해치상이 들어서고 있다.

성경은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출 20:4)라고 말하고 있다.

이승구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옛날 조각품이라면 문화재 보호차원에서 그냥 둘 수 있지만 굳이 새롭게 액운을 방지한다는 명목으로 경찰서에 해치상을 설치한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남대문경찰서 앞에서 만난 서울시민 박주섭(47)씨는 “아무리 옛것이라고 하더라도 장소와 분위기가 어울려야 효과를 볼 것”이라며 “해치상은 문화적 친근함보다 토테미즘적인 흉물스러운 느낌을 준다”고 말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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