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한국배치 논란] 美-中, 동북아 패권전쟁 ‘사드’로 표면화

입력 2015-05-20 02:29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제기한 존 케리 미 국무부 장관의 발언을 계기로 다시 한번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 전체의 외교지형이 드러나고 있다.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워싱턴 방문 이후 불거진 '미·일 신(新) 밀월'과 박근혜정부의 '한·중 밀월', 중국 시진핑(習近平) 정권의 '신형대국론'과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이 서로 충돌하면서 동북아 정세가 급변하는 형국이다. 거기다 김정은식 공포정치로 인해 북한의 향후 대외 행보를 짐작할 수 없는 상황도 지역정세의 불확실성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한·중 밀월’ 대 ‘미·일 신 밀월’=박근혜 대통령은 대통령에 당선된 뒤인 2013년 1월 당선인 특사를 미국이 아닌 중국에 맨 먼저 파견했다. 취임 첫해 워싱턴 방문 뒤 베이징을 찾았지만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만남을 통해 친중 외교 기조를 공식화했다. 직전 이명박정부 당시 다소 멀어졌던 중국과의 관계개선 명목이었지만 한·중은 최고위급 전략대화는 물론 군사 당국 간 대화 채널까지 개설하며 중국과 밀착했다. 특히 ‘아베 신조 일본’의 과거사 왜곡에 대한 양국의 공동 스탠스는 ‘한·중 밀월’을 더욱 두드러져 보이게 했다.

오바마 행정부는 겉으로 “한국이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한·미 관계에도 좋은 일”이라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박근혜정부가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보다 중국과 더 가까워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지우지 못했다. 이때부터 미국이 아베 총리의 집단자위권 확보와 평화헌법 개정을 일관되게 지지했던 것도 한·중 밀월에 대한 견제 포석으로 풀이된다.

결국 미국은 일본이 오바마 대통령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적극 뒷받침하자 올해 4월 아베 총리의 방미를 계기로 미·일 신 밀월 노선을 노출했다. 일본에 ‘전쟁할 수 있는 정상 국가로의 변화’라는 날개를 달아줌으로써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막겠다는 의도였던 셈이다. 미국이 사드 한반도 배치에 매달리는 이유에는 북 핵·탄도미사일 방어 외에 X밴드 레이더를 통한 중국 내 군사동향 감시 목적이 포함돼 있다는 게 외교·안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 대 ‘신형대국론’=시 주석은 2013년 3월 국가주석 취임 일성으로 신형대국론을 들고 나왔다. 강력한 경제력과 국력을 바탕으로 정치·군사 분야에서도 미국의 대항마 역할을 하겠다는 것이었다. 동북아를 이런 역할의 시험무대로 삼는 중국은 한·일에서의 미군 활동이 증대될 때마다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한국과의 밀착 외교를 펼친 것 역시 남한에서의 미국 영향력 줄이기 차원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반면 오바마 대통령은 집권 2기에 접어들면서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냉전시대 이후의 세계 양강(G2) 대결의 주무대가 바로 중국이 자리 잡은 동북아이고 이곳에서 신형대국론을 막아내겠다는 구상이다. 아시아 재균형 정책의 핵심은 바로 한·미·일 삼각 안보동맹이다. 주한·주일 미군 전력에 한국 군사력과 일본 자위대 방위력을 합칠 경우 중국의 군사적 팽창을 봉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세계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호전적인 북한 김정은정권의 도발 위협을 막는 데도 삼각 안보동맹은 필수불가결하다.

전혀 상반된 미·중의 거시 안보 전략은 한국으로 하여금 선택을 강요받게 하고 있다는 게 외교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지난 3월 말 국회에 출석해 “미국과 중국으로부터 동시에 구애를 받고 있는 것은 한국으로선 축복”이라고 말했지만 반대로 한·미동맹이냐, 친중 노선이냐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미국의 안보 구상에 쉽게 반기를 들 수 없고, 그렇다고 지금까지 쌓아온 중국과의 밀착도 포기하기 쉽지 않다.

미국의 사드 배치 압박에 어떻게 대처하느냐 하는 문제가 박근혜정부의 외교적 힘을 보여줄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도 이런 맥락에서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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