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금융 거래 때 고객 얼굴을 보지 않고 실명 확인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은 획기적인 변화다. 1993년 금융실명제 도입 당시 실명 확인은 대면으로 해야 한다는 유권해석을 22년 만에 바꾼 데 따른 것이다. 이 같은 금융위원회 조치로 고객들은 올 12월부터 은행에 가지 않고도 첫 계좌를 개설할 수 있게 됐다. 은행권에 이어 내년 3월부터는 증권사 등 다른 금융권에서도 비대면 실명 확인이 시행된다. 인터넷·모바일 뱅킹 발달로 비대면 거래가 늘어나는 현실을 반영해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를 완화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금융(finance)과 기술(technology)이 결합한 새로운 금융서비스를 뜻하는 ‘핀테크(FinTech)’ 시장 활성화를 위한 조치다. 미국 유럽 등 선진국은 물론이고 중국에도 뒤처져 있는 핀테크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뒤늦게 시동을 건 셈이다. 금융업계는 인터넷전문은행 도입 등 국내 자본시장 발전의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그렇지만 비대면 실명 확인의 부작용에도 대비해야 한다. 가장 우려되는 게 명의도용이다. 누군가 개인정보를 빼내 통장을 쉽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대포통장 개설에 따른 금융 범죄가 더 활개를 칠 수 있다는 말이다. 당국은 신분증 사본 제시, 영상통화, 현금카드 전달 시 신분 확인, 기존 계좌 이체 등을 활용한 3중 확인 절차를 거쳐 사고를 막겠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편리함 못지않게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으므로 만반의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오프라인 중심의 오래된 금융규제는 시대 흐름에 따라 개선하는 게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급속도로 변화하는 글로벌 트렌드를 뒤쫓아 갈 수 없다. 핀테크 규제만 해도 그렇다. 최근 학술대회에 참석한 이석우 다음카카오 공동대표는 2012년 3월 뱅크월렛카카오(소액송금 서비스)를 기획했지만 당국의 보안성 심의를 받는 데만 1년 반이 걸려 무려 2년 반이 지나서야 서비스를 출시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에 만연한 규제 문화 탓이라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금융보안은 중시돼야 하지만 규제가 기업의 발목을 잡아서도 안 된다. 사전규제를 최소화하고 사후제재를 강화하는 식으로 규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금융연구원의 지적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사설] 사전규제 최소화와 사후제재 강화가 핀테크 키운다
입력 2015-05-20 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