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5월 21일]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

입력 2015-05-21 00:33

찬송 :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419장(통 47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이사야 66장 10∼14절


말씀 : 사도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말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그런데 오늘 본문도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다 그 성읍과 함께 기뻐하라 다 그 성읍과 함께 즐거워하라”(10)

지난번 제2 이사야서를 ‘구약 속의 신약’이라고 소개한 것 기억하시나요? 그런 관점에서 오늘 본문은 구약 속의 빌립보서라 할 수 있습니다. ‘기뻐하라’ 합니다. 신약의 빌립보서가 명제적 진리를 선포하고 있지만 기뻐해야 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드러내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본문은 그 이유가 명확합니다. 예루살렘은 예루살렘 성전과 하나님의 말씀인 법궤를 말합니다. 이는 신약시대의 교회와 교회에서 선포하는 말씀을 뜻합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사모하고 말씀에 갈급한 너희여’라고 읽을 수 있습니다.

세상의 슬픈 자도 낙심된 자도, 상처받은 영혼도 교회에 나와 주의 말씀을 듣고 받을 때 위로받을 수 있습니다. 낙심 중에 있던 사람은 소망 가운데 살게 됩니다. 상처받은 심령은 치유 받아 기뻐하게 되리라는 약속입니다.

본문은 불과 다섯 절에 불과한데 그 안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말이 자그마치 여섯 번이나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유는 딱 하나입니다. ‘풍성함’입니다.

“너희가 젖을 빠는 것 같이 그 위로하는 품에서 만족하겠고 젖을 넉넉히 빤 것 같이 그 영광의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라.”(11)

아이가 웁니다. 엄마는 기막히게 그 울음의 의미를 알아차립니다. 배가 고파 우는 것인지, 아파서 우는 건지? 엄마가 그리워서 우는지? 엄마는 아이의 눈물을 한 번도 외면한 일이 없습니다. 안아줍니다. 젖을 물립니다. 배고팠던 아이는 정신없이 젖을 빱니다. 서서히 배가 불러오자 아이는 금방 엄마 품에 안겨 스스로 잠들어 버립니다. 이 세상에 이 보다 더 만족스러운 영혼이 어디 있을까요. 만족은 ‘행복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읽혀지기도 합니다. “그 위로하는 품에서 행복하겠고.”

그 다음 말이 이것입니다.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로다.’ 더 이상 배고픔에 헐떡거릴 일이 없습니다. 목말라 헤맬 필요가 없습니다. 빈궁한 우리의 삶을 그분이 넉넉하게 채워주십니다. 푸르른 초장과 쉴 만한 물가로 인도해 주십니다.

풍성함은 주님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를 빈궁함에서 건지실 뿐 아니라 풍성함으로 이끌어 주심에 감사합니다. 풍요와 풍성함이 눈앞에 있는데도 굶주린 자처럼 이리저리 헤매던 우리를 용서하시고 이 풍성함으로 말미암아 더 많이 주를 찬양하며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주기도문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