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별명은 니콜이다. 키가 작아서 키 큰 니콜 키드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난 작은 키가 콤플렉스지만 내 작은 키가 사랑스러워.” 니콜이 말하곤 했고 나는 그런 모습이 자랑스러웠다.
우리는 같은 과 친구다. 졸업하고 나는 서울에서 일을 시작했고 그녀는 대구에 머물렀다. 나는 궁리했다. 이 재밌는 친구를 곁에 둘 수 있을까. 그러던 중 2개월짜리 잡지사 일자리가 생겼다. 하지만 잘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불안정한 일을 시작하기란 쉽지 않을 터. 그럼에도 니콜은 서울로 왔다. 물론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없이 고민하고 울었을 것이다. 자그맣고 볼품없는 자취방으로 그녀가 가져온 것은 책 두 권과 옷 가방 하나가 전부였다. 약속한 2개월이 끝나갈 무렵, 나는 예정에 없던 캐나다행을 결정했고 회사에서는 니콜이 나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를 바랐다.
“1년 뒤 남아메리카에서 만나기로.”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의심했지만 한국을 떠나기 전 나와 니콜은 그렇게 약속했다. 그리고 1년 후 약속대로 안데스 산맥과 마추픽추를 지나 우유니 사막까지, 나는 그녀와 함께했다. 나는 유난히 걸음이 빠르고 니콜은 유난히 걸음이 느려서, 자주 내가 앞서갔다. 그럴 때면 그녀는 셔터를 눌렀다.
우리는 서울로 돌아와 오랫동안 함께 살았다. 니콜은 열심히 일한 후 긴 휴가를 받아 종종 여행을 떠났고 한 순례길에서 외국인처럼 생긴 한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그들은 장거리 연애를 하던 중 결혼과 제주행을 결정했고 10만원짜리 웨딩드레스를 사서는 안나푸르나까지 가서 웨딩사진을 찍었다.
얼마 전 니콜의 사진전에 다녀왔다. 서울 지인들과 잘 이별하기 위해 준비했다고 한다. 한쪽 벽면에 어딘가를 걷는 내 뒷모습 사진이 걸려 있었다. “등은 거짓말을 할 줄 모른대. 그러니 걱정하지 마, 두려워하지도 마. 아직 찾아오지 않은 이야기들이 너의 등을 새롭게 품게 될 거니까.” 그녀가 말했다.
나는 니콜에게 행복해줘서 고맙다고 답하곤 작별인사를 했다. 안녕, 니콜! 너의 새 삶에도 안녕!
곽효정(에세이스트)
[살며 사랑하며-곽효정] 안녕, 니콜!
입력 2015-05-20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