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 한반도 배치’ 발언은 미국의 외교 수장으로서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군 당국은 이 언급이 사드 한반도 배치를 염두에 두지 않은 일반론적 언급이라고 애써 축소하고 있지만 우리 정부에 대한 우회적인 압박이라는 해석이 더 많다. 사실상 노골적으로 한반도 배치를 기정사실화하려는 의도로 보는 시각도 상당하다.
◇장관회담에서도, 대통령 면담에서도 언급되지 않은 사드=당초 케리 장관이 방한한 것은 한·미 외교장관회담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사드는 이 회담에서도, 앞서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의 면담에서도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주한미군을 만나 사드를 꺼낸 케리 장관의 말은 우리 외교 당국과 전혀 조율하지 않은 셈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18일 “사드는 장관회담에서 공식 의제가 아니었으며 대통령 면담에서도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지금까지 사드 배치에 대해 ‘전략적 모호성’에 따라 긍정도, 부정도 내비치지 않았다. 이에 따라 한·미 당국은 사드와 관련해 ‘요청도 협의도 결정도 없다’는 ‘3NO’ 입장을 유지해 왔다.
하지만 이면에서는 사드와 관련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시작은 지난해 5월 미 월스트리트저널이 “미군이 한국에서 사드 부지 선정 작업을 시작했다”고 보도하면서부터였다. 같은 해 9월 로버트 워크 미 국방부 부장관이 이 같은 사실을 인정하면서 논란은 더욱 커졌다. 이후에도 미 정부 인사들의 사드 관련 발언은 끊이지 않았다.
케리 장관의 이번 발언은 앞서 미 정부 인사들이 내놓은 관련 언급과 비교해볼 때 큰 변화는 없다. ‘한반도’ ‘배치’라는 표현이 사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 외교 수장이 다른 곳도 아닌 주한미군 기지에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 자체가 파장을 야기한다.
◇미국 전략 바뀌었나…북한 미사일 위협 고조=북한은 핵실험 및 장거리 탄도미사일(ICBM) 시험에 이어 최근에는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시험을 실시했다. 이러한 북한의 행보는 사드와 관련한 미국의 입장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특히 케리 장관 발언은 사드의 한반도 배치에 강한 경계감을 갖는 중국과 러시아를 자극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류젠차오(劉建超)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는 지난 3월 방한해 “(사드 배치와 관련한) 주변국의 관심과 우려를 중시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알렉산드르 티모닌 주한 러시아대사 또한 지난달 말 국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사드가) 러시아 접경지역에 배치되는 데 반대한다”고 말했다.
주변국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사드의 한반도 배치를 강행하겠다는 입장을 시사한 건 북한의 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방증이다.
◇우리 정부…“일반론적 언급일 뿐”=일단 우리 정부는 케리 장관 발언의 파장을 애써 축소하려는 분위기다. 한미연합사령부 관계자는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한 일반론적 언급일 뿐”이라면서 “특히 ‘전개’ ‘배치’라는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 또한 “해당 발언의 의도를 따지기보다는 우선 정확한 내용을 미측에 확인해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사드 배치에 대한 미국의 압박이 가시화되면서 우리 정부 입장은 난처해질 전망이다. 특히 지금까지 사드에 대해 유지해 오던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란 더욱 힘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韓美 외교장관회담] ‘사드 판매·배치’ 계산된 돌출 발언?
입력 2015-05-19 03:00 수정 2015-05-19 18: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