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4시쯤 서울 중구 을지로3가 파출소에서 기어 21단짜리 자전거 '두 바퀴 순찰차'가 출동했다. 1·2호 중 2호에 올라탄 기자는 경찰 제복이라도 입은 양 몸에 힘이 들어갔다. 다소 녹슬고 먼지가 낀 자전거이긴 해도 명색이 '순찰차'였다. 그런 으쓱함은 페달을 밟는 순간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 두 바퀴 순찰차는 기어가 가장 낮은 1단에 맞춰져 있었다. 바퀴질이 헐겁고 한 번에 나아가는 거리가 아쉬울 만큼 짧았다.
‘이 상태로 순찰이라니.’ 허탈감 속에 열심히 페달을 밟으며 정종대(53) 파출소장의 1호를 뒤쫓았다. 가장 먼저 도달한 곳은 충무공(이순신 장군) 생가 터가 있는 인현동의 옛 명보극장 자리였다. 그곳 가판대에서 파마머리 이종임(80·여)씨가 기다렸다는 듯 캔 음료를 꺼내 들고 나와 반겼다. 약 50년간 이 자리를 지켜온 이씨는 동네에서 ‘이순신 할머니’로 통한다. 그는 “이렇게 다 만나고 다니니 얼마나 좋아” 하며 정 소장의 팔을 쓰다듬었다. 정 소장은 기자에게 “올 때마다 할머니가 자꾸 뭘 주려 한다. 오늘은 지갑도 안 가져왔다”며 어서 가자고 재촉했다.
이순신 할머니는 바짓단을 걷어 올려 왼쪽 발목의 화상을 내보였다. 정 소장이 놀라자 할머니는 “그때 그 뜨거운 물”이라고 했다. 정 소장은 대번에 “아, 4월 28일요?”라고 되물었다. 정 소장은 경찰이라기보다 동네 반장 같았다. 할머니 사정을 소상히 알았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사이에 두고 그간의 일을 이야기했다. 정 소장이 다시 출발할 때 자전거 뒤 짐받이 밧줄 사이에는 대체 언제 그랬는지 할머니가 꽂아둔 캔 음료가 매달려 있었다.
명보사거리에서 마른내로를 따라 2분쯤 달리자 인현동 인쇄골목이 나타났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들어갈까 말까 했다. 폭 3m쯤 되는 길에 배송을 기다리는 인쇄물이 늘어서 있었다. 잠시 후 더 좁은 골목이 나왔다. 감히 차는 머리도 들이밀지 못할 길이었다. 정 소장은 오토바이와 지게차를 요리조리 피하며 골목을 누볐다.
한 가게 앞에 멈추자 10년 넘게 이 골목을 지켰다는 ‘유일금박’ 김종한(54) 사장이 나왔다. 그는 정 소장과 농담을 주고받았다. 경찰이 무섭지 않으냐 물었더니 김 사장은 “아이고 뭐가 무서워”라며 웃었다. 정 소장은 이순신 할머니가 준 음료를 그와 나눠 마시고는 “112가 가장 빨라.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해요”라며 다시 페달을 밟았다.
인현시장 골목은 폭이 1m 남짓했다. 정 소장은 자전거 종을 울리고 ‘인현국수’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 김기성(56)씨가 밝은 얼굴로 “오늘 월례회를 해서 맥주 한 잔했다”고 했다. 그는 상인회장이자 자율방범대 총무다. 정 소장은 김씨 옆에 앉아 “자율방범 할 분이 없어서 큰일 났네. 사람 좀 소개해 달라”고 부탁하고는 다시 자전거에 올랐다.
충무로4가 ‘진양상가’ 아래는 일방통행로였다. 역시 오토바이와 지게차가 즐비했다. 정 소장은 그 사이로 페달을 구르며 “순찰차를 타고 오면 한참 돌아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해 가을 자신의 중고 자전거와 중부경찰서 체육대회 때 받은 경품 자전거를 지금의 두 바퀴 순찰차로 변신시켰다.
파출소로 돌아올 때까지 약 1시간 동안 자전거 위에서 보낸 시간은 10분 정도였다. 대부분이 주민들과 인사하고 대화하는 시간이었다. 자전거 순찰을 하면서 정 소장은 앞을 보는 일이 거의 없었다. 수시로 좌우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주민을 만나면 머리를 숙이거나 손을 흔들어 인사했다. 느린 자전거로 구석구석 살폈고 여러 주민과 눈을 맞췄다. 기어 1단은 소통을 위한 속도였다. 느린 만큼 깊게 만났다. 기자도 주민들의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 소장은 “자전거 순찰은 소박한 맛이 있고 주민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말했다.
두 바퀴 순찰차는 지난 10일 집에 돌아오지 않은 여중생 함모(16)양을 찾아내는 데도 공을 세웠다. 순찰차가 같이 출동했지만 함양을 찾은 건 두 바퀴 순찰차였다. 2팀장 최종명(56) 경위는 새벽 2시20분쯤 수표동 청소년수련관에서 함양을 발견했다. 최 팀장은 “인파가 많을 때는 골목골목 살펴야 순찰이 된다. 느려야만 가능하다. 두 바퀴 순찰차는 그렇게 순찰 때는 가장 천천히 가고, 신고가 들어오면 가장 빠르게 간다”고 말했다.
강창욱 김판 기자 kcw@kmib.co.kr
[을지로3가 파출소 ‘자전거 순찰’ 국민일보 기자 동행 르포] 느릿느릿… 구석구석 ‘두 바퀴 순찰차’
입력 2015-05-19 02: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