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참한 일이 발생했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자살을 결심한 예비군 대원이 총기를 난사했다.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는 사이 같이 훈련받던 예비군 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난사한 본인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가해자는 군 복무 시 관심병사로 요주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작년 ‘임 병장 총기난사 사건’과 ‘윤 일병 사건’을 겪으면서 우리는 관심병사를 논의했다. 이제는 관심예비군 문제를 논의할 시기다.
가해자의 계획된 범행이라고는 해도 예비군 훈련의 구조적 문제점과 허술한 대응에 대한 질타를 피할 수 없다. 우선 사격훈련과 같이 인명을 앗아갈 수도 있는 훈련을 실시하면서 일대일로 조교를 배치하지 않은 점이 지적된다. 예비군 20명이 사격 중인데 조교 6명에 통제교관은 3명뿐이었다 하니 사고에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사격 시 총기고정틀에 안전 고리를 연결하고 총구를 함부로 돌리지 못하도록 하는 안전조치가 제대로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일부 여론은 왜 굳이 예비군이 사격훈련을 하느냐고 문제 삼기도 한다. 사격술이란 자전거 타는 것처럼 쉽게 잊히지 않는다는 게 근거다. 게다가 현재 예비군훈련처럼 사격술 향상은커녕 그저 실탄을 쏜다는 행위에 만족하느니 아예 안 쏘고 안전한 게 낫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병력이 차후 8년간 11만명 감소되는 상황에서 예비군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예비군훈련도 그저 시간 때우기가 아니라 실질적인 전투력을 키우는 것이 되어야 한다. 사고가 났다고 훈련을 중단할 수는 없다. 문제는 세상에는 여전히 수많은 관심예비군이 있다는 점이다. 많은 젊은이들은 총기난사의 두려움 속에 예비군훈련에 나서야 한다.
결국 예비군의 형식적 관리가 문제다. 전시에 예비군 전력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상당한 재원이 투입되어야 함에도 280여만명 예비군을 위해 쓰이는 돈은 국방예산의 1%도 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럴싸한 규정만 만들어놓고 적절한 예산과 인력도 할당하지 않고 정해진 훈련량을 소화하라고 한다면 누구도 제대로 관리할 수 없다. 실제로 후방의 예비군 훈련장들은 엄청난 훈련 일정을 소화하느라 적은 인원과 장비로 악전고투하고 있다. 그 짐을 덜어주기 위한 노력도 안 하는 정책결정자나 국회의원들에게 잘못했다는 얘기를 듣는 것도 참으로 황망한 일이다.
국가가 예비군에게 총을 맡기는 행위는 그 사람을 믿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총을 준 사람을 믿지 못해 총을 안전 고리에 걸고 사격하는 것은 미성년자가 사격할 때나 있을 법한 일이다. 세계 어느 나라 군대에서도 현역 군인이나 베테랑 예비역이 사격하면서 총을 묶어 놓는 일은 없다. 북한의 위협에 대비하는 실전형 군대라면 기동하면서 사격해도 시원치 않을 판에 현역이든 예비역이든 총을 제대로 맡길 수 없는 현상은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우선은 국방부가 발표한 대책에 관심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 사격장 안전대책으로 일대일 조교 운용, 안전 고리 운용, 사선 요원에 대한 신형 헬멧과 방탄복 지급 방안 등이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더욱 근본적으로는 예비군에게 총을 믿고 맡길 수 있는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역 복무 시 적응이 어려웠던 병사들을 파악해 예비군으로 자료를 넘겨주는 일은 필수적이다. 낙인효과와 인권 문제 제한이 있다고는 하지만 예비군으로서 훈련하고 있는 동안만큼은 공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기에 필요한 제한 조치다. 그렇지 않으면 유사한 사건이 재발할 수 있다. 믿고 총기를 맡길 수 있는 예비군이어야 나라를 지킬 수 있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
[시론-양욱] 예비군도 엄연한 군대다
입력 2015-05-19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