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경제는 가까운 시일 내 리세션(경기침체)이라는 빙산과 충돌할 수 있는데 구명정도 없이 항해하는 중이다.”
HSBC의 수석이코노미스트 스티븐 킹이 최근 보고서에서 밝힌 경고 메시지다. 보고서 제목부터가 ‘세계경제의 타이태닉 문제’다. 현재의 글로벌 경제 상황을 100여년 전 빙산과 부딪쳐 침몰한 타이태닉호의 운명과 동일시하는 것은 극단적인 시각일 수 있다. 그러나 CNN머니는 킹의 경제 전망을 전하면서 “(이런 비관론이) 간혹 들어맞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경청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전례 없는 글로벌 통화완화 바람, 정말 효과는 있는 건가=올 들어 27개국이 기준금리 인하나 양적완화로 돈 풀기에 나섰다. 주요 20개국(G20) 중에서는 절반가량이 통화완화 바람에 동참했다. 어떻게든 경기를 되살려보려는 절박한 몸짓인데 기대만큼 경기가 회복되는 모습은 아직 찾아보기가 어렵다. 그러다보니 킹의 견해와 같은 비관론이 나온다. 킹은 “평소 구명정으로 쓰이던 금리 인하나 정부지출 확대가 이제 더 이상 유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메릴린치의 수석투자전략가 마이클 하트넷도 금리 인하를 비롯한 각국의 통화완화 정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적으로 550차례의 금리 인하가 단행돼 현재 상당수 국가의 기준금리와 채권금리가 전례 없이 낮은 수준이지만 이 정책이 자산가격 상승만 가져오고 실물경제로는 제대로 전달되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미국 헤지펀드 거물인 폴 싱어 엘리엇매니지먼트 회장도 “초저금리 정책과 대규모 채권 매입은 금융위기 당시에는 시장의 충격을 완화하는 데 기여했지만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지속되다보니 불평등 심화 같은 부작용이 상당하고 정책의 결과도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싱어 회장은 통화정책 정상화(금리 인상) 시 채권시장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했지만 저명한 비관론자인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를 올려도 채권시장이 요동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루비니 교수는 “일련의 통화완화 조치에 따른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흘러들지 않고 자산 팽창을 유발하는 게 문제”라며 “자산 팽창은 자산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 자산·신용 버블(거품)을 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물경기와 상관없이 급등하는 증시는 이처럼 버블 우려를 부르고 있다. 로버트 루빈 전 미국 재무장관도 “지속적인 주가 상승, 고위험 대출상품 급증 등을 고려하면 이미 금융시장이 버블 상태에 도달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성장잠재력 크게 약화…미국·중국의 부진은 치명적=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금융위기 이전인 2001∼2007년 평균 4.4%이던 세계 경제성장률은 위기 이후 2008∼2014년 평균 3.3%로 둔화됐다. 같은 기간 선진국의 평균 성장률은 2.5%에서 0.9%로, 신흥국은 6.7%에서 5.3%로 낮아졌다.
주요국 중 유일하게 잘나가는 듯했던 미국도 최근 주춤한 상태다.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예상보다 저조한 0.2%로 나온 뒤부터 주요 경제지표들이 모두 부진하다. 이 때문에 앞서 연준이 제시한 올해 미국 성장률 전망치 2.3∼2.7% 달성 가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킹은 미국과 글로벌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갈 시나리오 중 하나로 중국의 침체를 꼽았다. 중국의 성장률이 당장 마이너스로 추락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성장 속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지난달 수출증가율 등 경제지표 대부분이 전월 실적과 시장 예상치를 밑돌았다. 중국 당국은 지난해 11월에 이어 올해 2월에도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했으나 좀처럼 경기가 살아나지 않자 최근 또다시 금리를 내렸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중국의 부진한 부동산 투자가 GDP 성장률을 떨어뜨려 올해 중국 성장률이 6.5% 이하로 하락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중국 경기 둔화의 충격파는 이미 아시아 전역으로 퍼지고 있다. 지난해 3분기 7%였던 동아시아 지역 수출증가율은 4분기에 2.7%로 급감했다. 중국의 수요가 약해졌기 때문이다. 미국 금융 전문지 배런스는 “아시아 공장들이 세계가 아닌 중국으로 수출 대상을 바꾸면서 누렸던 눈부신 수 출성장세는 막을 내렸다”고 전했다. 도이체방크도 “한국 대만 등 아시아 주요 수출국들이 고르지 못한 미국의 경기 회복과 빠르게 둔화되는 중국의 성장 때문에 올해도 부진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오랫동안 부진의 늪에 빠져 있던 유로존 경제는 양적완화 시행 이후 개선되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 유로존의 회복이 세계경제 회복을 이끌지는 못하고 있다. 대신증권 박형중 연구원은 “양적완화와 저유가 효과에 힘입어 유로존 경기의 개선세가 지속될 전망이나 유로존 경기 회복이 세계경제에 기여하고 있다는 징후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천지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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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이슈] ‘금리 인하’ 구명정 물샌다… ‘세계 경제’ 침몰론 재부상
입력 2015-05-19 02: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