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국민일보 기자, 인터넷에 글 올린 20대 남성 접촉해보니… ‘직원할인’ 혜택을 파는 세태

입력 2015-05-18 02:55 수정 2015-05-18 10:41

그 남자는 “○○(백화점) 맞지요?”라고 물으며 다가왔다. 나이는 20대 중반으로 보였고 비즈니스 캐주얼 차림에 백팩을 메고 있었다. 기자는 이틀 전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글을 보고 그와 통화했다. 백화점 할인을 받게 해준다는 글이었다. 첫 통화에서 “직원 할인을 받게 해줄 테니 수수료를 현금으로 달라”고 했다. 그를 최근 서울의 한 백화점 앞에서 만났다.

남자는 스마트폰 게임을 하며 따라왔다. 미리 물건을 봐둔 액세서리 매장을 못 찾자 능숙하게 위치를 알려줬다. 뭘 살지 고민하는 모습을 보고는 생각하는 가격대를 물었다. “50만원”이라고 하자 “그 정도 가격이면 A사 지갑이 더 괜찮다”며 다른 브랜드를 권하기도 했다. “그냥 여기서 사겠다”고 했더니 물건 고르는 걸 도왔다. “어떤 분에게 드릴 거냐”며 나이와 체형 등을 물어보고 제품을 추천했다.

지갑과 벨트 등을 고르고 난 뒤 남자는 매장 직원에게 카드를 제시했다. 가로 5㎝, 세로 8㎝ 정도의 직사각형 카드에는 회사명과 부서명이 적혀 있었다. 영문이 섞인 숫자들이 옆에 나열돼 있었다. 이 카드로 판매가의 20%를 할인받았다. 기자는 원래 금액에서 10만원 이상 깎인 40만원 정도를 체크카드로 결제했다.

매장을 나와 “얼마 드리면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4만원만 달라”고 했다. “수수료가 원래 40%냐”고 묻자 “그때그때 다른데 보통 10만원 안쪽으로 받는다”고 답했다. 남자는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여기는 직원 할인 폭이 크다”며 “할인 한도가 남는 게 아까워 이렇게 다른 사람 할인 구매를 도와준다”고 덧붙였다.

그는 가족이 이 백화점 직원이라고 말했다. 자신은 다른 회사에 다니면서 월 300만∼400만원을 번다고 했다. 평소 쇼핑을 즐긴다는 그는 “이거, 얼마 되지도 않는다. 그냥 취미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자는 유명 브랜드 쇼핑에 관심이 많아 보였다. 입고 있던 재킷을 보이며 “원래 70만원짜리인데 이것도 싸게 샀다”고 했다. 왼쪽 손목엔 은색 캘빈클라인 시계를 차고 있었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언젠가 내가 백화점에서 같은 물건을 훨씬 싸게 사는 걸 보고 다른 사람들이 도와달라고 하더라. 그 뒤로 ‘직원 할인’ 특혜를 이렇게 넘기곤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생면부지의 사람이 백화점에서 할인받게 해주고, 할인 금액의 10∼50%를 수수료로 받는다. 피차 남는 장사다. 남자는 “백화점에서 몇 백만원씩 쓰는 사람한테는 이 직원 할인이 크다. 한도가 남을 때 인터넷에 가끔 (광고를) 올린다”고 했다.

그는 한 할머니가 700만원 정도 결제할 금액을 100만원쯤 할인받게 도와준 적이 있다고 했다. 할머니가 대가로 50만원을 주려고 했지만 손자들 선물이라는 얘기에 10만원 정도만 받았다고 한다. 이렇게 한 달에 얼마 정도 버느냐고 물으니 “많이 하면 50만원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도 “돈을 벌려고 하는 건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게 불법인지 아닌지는 모르겠다”며 웃었다.

남자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그는 전화에 대고 “지금 미팅 중입니다”라고 답했다. 또 다른 직원 할인 요청자와 통화하는 듯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다른 미팅이 있다”고 했다.

현금인출기에서 4만원을 뽑아 남자에게 건넸다. 한 카페에서 커피를 사겠다고 하자 “여기는 비싼데. 아마 직원 할인 적용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인근 지하철역 개찰구 앞에서 서로 “어디로 가느냐”고 물은 뒤 헤어졌다. 남자는 지하철을 타지 않고 다른 출구로 다시 올라갔다. 상품은 모두 환불했다.

17일 인터넷에는 이 남자 말고도 직원 할인 혜택을 내놓은 사람이 심심치 않게 보였다. 매장까지 같이 가서 할인을 도와준다는 사람, 상품을 대신 구매해준다는 사람, 사번 등 직원 정보를 알려줘 할인 혜택을 받게 해준다는 사람, 직원 쿠폰을 파는 사람 등 유형은 다양하다. 롯데월드 연간이용권, 피자헛 40% 직원할인 쿠폰, 금강제화 50% 할인 직원우대권 등도 매물로 나왔다. 꽤 안정된 직장을 가진 사람들마저 직원 복지로 제공된 혜택을 팔아 용돈을 벌고 있는 것이다.

한 백화점 직원은 “지인이나 가족들이 구매할 때 매장으로 내려가 결제해주는 직원은 종종 있다”며 “차액을 남겨 이익을 본다면 용돈벌이로 사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강창욱 김판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