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공작원에 포섭된 국내 히로뽕 제조 ‘기술자’들이 적발되면서 ‘외화벌이’를 위한 북한 당국의 히로뽕 생산 사실이 처음 확인됐다. 북한은 한국 마약사범을 끌어들여 무려 230만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을 직접 생산했다. 대남 공작 조직이 이 과정을 주도했다.
또 북한은 고(故) 황장엽(사진)전 노동당 비서를 암살하기 위해 정예 공작원뿐 아니라 국내 마약사범까지 동원한 것으로 드러났다. 공안 당국은 관련 첩보를 내사하다 귀순한 북한 공작원이 범행을 자백하자 본격 수사에 들어가 북한과 공모한 마약사범들을 검거했다.
◇북, 히로뽕 직접 제조 최초 확인=구속 기소된 방모(69)씨는 1980년대 마약 관련 범죄로 두 차례 징역형을 선고받은 전력이 있다. 방씨는 96∼97년 브로커를 통해 북한 공작원들과 접선, 히로뽕 제조·판매 방안을 논의했다. 애초 목표는 히로뽕 1t을 제조하는 것이었다.
방씨 일당은 히로뽕 제조에 필요한 각종 물품과 화학약품 등을 준비해 중국 단둥∼북한 신의주 간 국제화물열차 편으로 북한에 몰래 들여보냈다. 부산에서 북한 나진항으로 가는 화물선을 통해서도 밀반출했다. 이들은 2000년 5월 북한 작전부 소속 군인들이 안내하는 고무보트를 이용해 압록강을 건넜고, 군용 트럭을 타고 황해북도 사리원연구소까지 이동했다. 북한 당국이 적극적으로 히로뽕 제조에 개입했다는 의미다. 검찰 관계자는 “그간 북한의 히로뽕 제조 관련 정보는 많았으나 이번 수사를 통해 대남 공작 조직이 직접 히로뽕을 제조한 사실이 최초로 밝혀졌다”고 말했다.
공안 당국은 북한이 1차 남북 정상회담 기간(2000년 6월 13∼15일) 중 히로뽕 제조업자들을 밀입북시켰다는 점, 부산∼나진 화물선 항로를 히로뽕 설비·원료 운반 통로로 사용했다는 점 등을 들어 “북한이 남북 교류협력 공간을 대남 공작에 악용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경로로 황장엽 암살 공작=북한 공작원 장모씨는 2009년 9월 중국 베이징으로 김모(63·구속기소)씨를 불러 황 전 비서 암살 지령을 내렸다. 장씨는 “황장엽을 죽여도 남한 사람이 아니니 상관없지 않나. 성공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고 꾀었다.
김씨는 2010년 10월 황 전 비서가 사망하기 전까지 중국을 오가며 10여 차례 장씨와 실행 방안을 협의했다. 황 전 비서 동선을 파악해 보고하고, 거주하던 안전가옥 주변 곳곳을 촬영해 넘겼다. 김씨는 암살 실행자로 해외 특수부대 출신의 베트남 살인청부업자, 국내 조직폭력배를 물색하기도 했다. ‘2009년 11월 2일’을 D데이로 잡고, 그 전날 황 전 비서가 출연하던 반북매체 입주 건물을 조직폭력배 4명과 함께 사전 답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비용 문제로 사이가 틀어지면서 실행하지 못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북한은 정예 공작원들을 침투시켜 황 전 비서 암살을 시도했다. 2009년 12월 정찰총국 소속 2명이 암살 지령을 받고 탈북자로 위장해 입국했다가 국가정보원 신문 과정에서 신분이 들통났다. 2010년 8월에도 정찰총국 공작원이 같은 목적으로 잠입을 시도하다 적발됐다. 이들에겐 모두 징역 10년이 선고됐다.
◇노동당 간부 ‘상납용’ 선물도 제공=김씨는 2009∼2011년 공작원 장씨의 명령에 따라 수도권 열병합발전소 위치, 최신 지도책, 한국군 무기연감, 미국산 군용 쌍안경 2대 등도 넘겼다. 장씨는 2011년 11월 “당의 높은 분에게 선물해야 한다”며 체지방측정기, 공기주입식 안마기도 요구했다. 김씨는 2250만원을 송금 받아 체지방측정기와 안마기를 2대씩 구입한 뒤 중국으로 넘어가 건넨 것으로 조사됐다.
지호일 문동성 기자 blue51@kmib.co.kr
北 “황장엽 처단하라” 지령… 10여 차례 암살실행 모의
입력 2015-05-18 0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