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칼럼] 증오로는 大事 이룰 수 없다

입력 2015-05-18 00:57

새정치민주연합 내분을 관통하는 하나의 흐름으로 증오의 정치를 꼽을 수 있다. 증오의 정치는 상대의 가슴을 후벼 파는, 도가 지나친 자극적 표현을 서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상대 진영이나 정당을 공격할 때 나타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같은 정당 내에서 계파 싸움을 할 때에도 종종 험한 말들이 동원된다. 그리고 공개석상에서 같은 당 소속 의원을 겨냥해 “공갈” 운운했다가 계파 갈등을 폭발시킨 정청래 의원의 막말 파동처럼 설화는 평지풍파를 불러온다.

정치권에서 독설은 불치병 수준이다. 잊을 만하면 도지는 이유가 있다. 광적인 극소수 지지자들의 환호에 연연하거나, 어떻게 해서든 일반 국민들의 시선을 끌고 싶어하는 얄팍한 충동 때문이다. 하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하다. 정치를 희화화하고, 불신을 가중시킨다. 그가 속한 정당의 신뢰도는 하루아침에 추락한다. 정 의원에 대해 사실상 직무정지 조치라는 강수가 내려졌듯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구사한 장본인도 화를 당하기 마련이다.

폭력적인 언어는 여야를 불문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야당에서 더 잦다. 정치인들의 깊게 생각하지 않은 발언을 접하며 유권자들은 그 말 속에서 독선과 오만, 폐쇄성, 아집 등을 읽어낸다. 새정치연합이 이런 잘못을 반복해 온 지가 벌써 10여년이다. 하지만 아직도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는 게 ‘정청래 막말 파동’으로 확인됐다. 본인과 계파 이익을 위해선 증오가 잔뜩 배어 있는 발언을 쏟아내서라도 지지자들을 결속시키는 게 옳다고 여기는 저급한 정치인이 여전히 엄존하고 있는 것이다.

되돌아보면 지난 2월 전당대회를 통해 새정치연합의 주류세력으로 자리 잡은 친노(親盧)가 증오의 정치를 야당 내에 퍼트린 측면이 있다. 2005년, 친노 인사인 유시민 전 의원에게 “옳은 얘기를 어쩌면 저토록 싸가지 없이 할까”라고 일갈한 이른바 ‘김영춘 어록’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싸가지 없는’ 태도는 선거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2012년 대선의 경우 문재인 후보를 내세운 친노는 증오를 선거 전략으로 활용했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조사를 받던 중 스스로 목숨을 끊자 노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매우 분노했고, 대선 과정에서도 노 전 대통령을 절벽에서 뛰어내리도록 만든 사람들에게 대가를 치르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기 때문이다. 이는 정권을 바꿔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졌다. 그러나 친노 지지자들이 결속하자 새누리당 지지자들 역시 똘똘 뭉치는 결과가 초래됐다. 정권이 바뀌면 정치보복이 행해지고, 이성보다 감정에 치우친 정치로 사회가 극심한 갈등 속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불안감이 번지면서 보수세력이 결집한 것이다. 이렇듯 증오의 정치는 자신에게 더 깊은 상처를 주는 ‘양날의 검’이어서 이를 통해서는 집권이라는 대사(大事)를 이룰 수 없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하겠다. 2007년 대선 결과도 마찬가지다.

친노는 요즘 비노(非盧)와 한판 싸움을 벌이고 있다. ‘비노는 기득권을 챙기려는 과거 정치세력’이라고 몰아치며 문 대표 퇴진론을 정면으로 돌파할 태세다. 문 대표가 전면전의 선봉에 섰다. 친노 입장에선 억울한 면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공무원연금 개혁 등 국정과제들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친노와 비노로 갈라져 자기들끼리 사생결단식 대결정치를 펴고 있으니 좋게 보일 리 없다. 문 대표의 리더십이 얼마나 취약한지도 드러나고 있다.

‘문재인의 야당’은 증오의 정치를 청산하고, 상생·화해의 정치로 나아가야 한다. 싸가지가 있다는 걸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자정능력을 이미 상실한 건 아닐까. 딱하고 불안하다. 김진홍 수석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