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땅 신의주를 바로 눈앞에 둔 중국 땅 단둥. 지난 15일 그곳에서 사업하며 살고 있는 한국 분들과 오랜 시간 식사를 함께할 기회가 있었다. 힘들어 못살겠다는 말은 하면서도 눈빛에서는 그래도 희망의 끈들을 놓지 않고 있었다.
한때 단둥에는 한국인이 3000명이나 거주했다. 유동인구까지 감안하면 5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하지만 현재는 많아야 1000명도 안 된다. 사업을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갔거나 다른 살길을 찾아 베트남이나 미얀마로 떠난 사람이 많다.
이 커다란 변화를 만든 계기는 2010년 5·24조치였다. 천안함 사건 직후 당시 이명박정부는 강도 높은 대북 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최소한의 인도적 대북 지원과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 중단, 우리 국민의 방북 불허, 대북 신규 투자 불허 등을 골자로 하고 있다. 당연히 북한으로 들어가는 상품의 70∼80%를 담당했던 단둥이 직격탄을 맞았다.
5·24조치는 북한에 따끔한 매가 아니라 솜방망이로 끝나 버릴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우리가 손을 뗀 곳은 중국인들이 다 차지했으니 북한으로서는 손해 볼 일이 없었다. 한 사업가는 “그때 5·24조치를 대통령이 아니라 통일부 장관 수준에서 발표했으면 얼마나 좋았겠느냐”며 아쉬워했다. 그래야 대통령이 못이기는 척 지금이라도 해제하는 것이 쉽다는 거였다.
식사를 하면서 질문을 던졌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이 눈앞에 있다면 정말 부탁하고 싶은 게 뭡니까?” 한 분은 “박 대통령에게는 그냥 좀 덮고 가자고 하고 싶다. 북한에는 한국에서 원하는 것 정도는 좀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다”고 했다. 5·24조치를 해제하기 위해 노력해 달라는 얘기다. 다른 분은 “한국에 팔리지 않고 남는 물건이 많지 않느냐. 민간이든 국가든 간에 북한에 줘라. 개인도 선물을 받으면 가만있지 않는다. 북한도 좀 받으면 풀어가야 한다”고 했다. 화해 협력 속에 통일의 기반을 마련해 달라는 얘기다.
분위기가 무르익을 무렵 베이징에서는 인도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와 리커창 총리의 회담 소식이 있었다. 24개에 달하는 계약과 협정을 맺는 등 경제 협력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모디 총리는 전날 시진핑 주석과도 시안에서 ‘소프트한’ 우정을 과시했다. 전면전은 아니더라도 국경 문제로 전쟁까지 치렀던 두 나라다. 아직도 국경 문제는 평행선이다. 중국은 인도의 앙숙인 파키스탄에 50조원에 이르는 투자를 하겠다고 나섰고 인도는 미국과 손잡고 노골적으로 중국 견제 대열에 동참하기도 했다. 그래도 필요하다면 서슴없이 손을 잡았다.
일본에 대한 중국의 태도 변화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지난해 중국은 일제 전범의 서면 자백서 45편을 매일 공개하는 대대적인 역사 공세를 퍼부었다. 많은 전문가들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총리직을 계속 갖고 있는 한 중국과 일본의 관계는 좋아질 수 없다고 단언했었다. 하지만 시 주석은 지난해 11월, 그리고 또 5개월 만에 아베 총리를 두 번이나 만났다.
최근 세계 각국은 서로 총칼을 겨눴던 사이라도 필요하면 친구가 된다. 바로 ‘국익’이라는 목표 때문이다. 서로 상대방의 국익을 침범하지 않는다면 인정하고 존중한다. 미국과 일본이 노골적으로 중국을 견제해도 중국은 크게 괘념치 않는다는 분위기다. 중국과 러시아가 ‘신밀월’을 과시해도 미국의 국무장관은 또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화해’를 시도해본다. 때론 원칙과 신념도 중요하지만 필요하다면 그것을 버릴 수 있는 유연함이 더 필요할 때가 있다.단둥=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특파원 코너-맹경환] 단둥에서 본 5·24조치 5년
입력 2015-05-18 00:20 수정 2015-05-18 19: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