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기쁠 때나 슬플 때나’ 41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이사야 51장 19절
말씀 : 이사야서는 ‘축소된 성경’이라 불립니다. 66장으로 구성된 이사야서와 총 66권으로 이루어진 숫자의 일치만은 아닙니다. 우리가 종종 ‘삼 구 이십칠’이라는 구구셈을 따라 구약성경 39권과 신약 성경 27권이라 외우기도 했지요. 흥미 있게도 이사야서가 이런 구조를 띠고 있습니다. 1장에서 39장까지의 메시지가 구약성경의 문체를 쏙 빼닮아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정죄의 메시지가 주종(主宗)을 이룹니다. 나머지 40장부터 66장까지 스물일곱 장은 신약성경의 분위기를 풍깁니다. 하나님의 위로와 구원의 메시지가 선포됩니다. 이 때문에 이사야서의 앞부분을 제1 이사야서로 뒷부분을 제2 이사야서로 부르는가 하면 제 2이사야서를 ‘구약 속에 있는 신약’이라고도 합니다. 제2 이사야서의 첫 마디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그렇다면 위로가 무엇일까요? 위로의 사전적 의미는 ‘괴로움을 어루만져 잊게 해 주는 것’, 또는 ‘수고를 칭찬하여 마음을 즐겁게 해 주는 것’을 뜻합니다. 헨리 나우웬은 위로는 외로운 사람과 ‘함께 함’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위로의 본질에 다가서기에는 뭔가 2%가 부족해 보입니다. 이런 정의는 어떤가요? “위로란 비가 올 때 우산을 받쳐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아 주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이런 위로를 받을 수 없는 이들이 있습니다. 본문입니다.
“이 두 가지 일이 네게 당하였으니 누가 너를 위하여 슬퍼하랴 곧 황폐와 멸망이요 기근과 칼이라 내가 어떻게 너희를 위로하랴.”
사람들은 심판을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으로 말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심판일 뿐입니다. 심판은 죽음 저편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어떤 사람은 30세에 이미 죽었는데 장례식은 70세에 치른다.’ 30세에 배움을 중단해 정신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람이 꿈도 목표도 없이 살다가 70세에 육체적으로 죽어 무덤에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심판이란 ‘하나님의 위로를 거둬가 버린 상태’라고 정의내릴 수 있습니다. 누구든 사막을 건널 수 있습니다. 광야에 내던져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막길이라도 오아시스가 있고 그늘이 있으면 견딜 수 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위로가 넘치는 가정이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정의 중요한 기능 중에 하나가 위로입니다. 창세기 24장은 한 가정의 탄생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그 핵심은 ‘위로’입니다.
“이삭이 모친 상사 후에 ‘위로’를 얻었더라.” 우리 가정 안에 그 위로가 넘쳐나나요? ‘위로로 가득 찬∼’ 거기 가정천국이 있습니다. 어떤 어려움을 당해도 위로를 받을 수 있는 곳이 가정이어야 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우리 서로 위로하며 살게 하시고 넘치는 위로로서 서로가 서로에게 희망과 꿈이 되게 해 주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송길원 목사(하이패밀리 대표)
[가정예배 365-5월 18일] 위로와 함께 하는 가정
입력 2015-05-18 0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