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1999년 정동길을 ‘걷고 싶은 거리’ 1호로 지정했다. 지난 9일에는 시민이 찾은 ‘골목길 명소 30선’에 정동길이 뽑히기도 했다. 정동길에 대한 서울시민들의 관심이 어느 정도인지 여실히 드러난다.
덕수궁 대한문에서 신문로까지 이어지는 너비 18m, 길이 1㎞쯤 되는 정동길 주변에는 기념비적 건축물들이 즐비하다. 배재학당, 이화여고, 정동제일교회는 근대식 교육기관, 근대식 여성 교육기관, 개신교 예배당으로는 모두 ‘최초’란 타이틀이 있다. 아관파천의 현장인 옛 러시아공사관, 을사늑약이 맺어졌던 중명전, 한국성공회의 상징인 성공회 서울성당은 근대와 현대를 잇는 공간이다.
정동길에는 서사의 흔적뿐 아니라 서정의 여운도 배어 있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가사처럼 정동길 한 구간 덕수궁 돌담길에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의 모습이 자주 눈에 띈다. 친구끼리 또는 가족 친지끼리 찾기도 하고 외국 관광객들도 자주 오곤 한다. 사실 정동길은 가을이 제격이다. 늦가을 밤, 은행잎이 폭신히 쌓여 있고 은은한 조명이 단풍나무를 비추는 정동길의 정경은 백미다. 서울시민 가운데 덕수궁 돌담길을 경험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또 정동 골목길에 담긴 이야기는 얼마나 무수할까.
정동길에 반가운 소식이 잇따른다. 일반인 출입이 제한됐던 덕수궁 돌담길 일부 구간이 완전히 열릴 전망이다. 주한 영국대사관 내 부지 70m와 일반인 출입 통제도로 100m 등 끊겼던 돌담길 170m 구간이 연결되게 됐다. 서울시와 영국대사관은 14일 ‘덕수궁 돌담길 회복사업 추진을 위한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1884년 영국이 이 땅을 대사관 부지로 사들인 이후 131년 만이다. 전 구간이 이어지는 내년이면 정동길의 매력이 한층 더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29∼30일에는 정동길에서 밤 축제 ‘정동 야행(貞洞 夜行)’이 열린다. 대낮에 서울시립미술관과 덕수궁 사이 공간에서 작은 전시회와 음악 공연이 펼쳐진 적은 많았지만 밤에 볼거리가 마련되는 건 처음이다. 굳게 닫혀 있던 미국 대사관저 ‘하비브 하우스’도 이 기간 개방된다고 하니 한번 가볼 만하다. 늦봄 정동길에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듯하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한마당-정진영] 걷고 싶은 곳, 정동길
입력 2015-05-16 0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