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과 인간이 춤을 추다, 교감을 나누다… 한국-프랑스 공동제작 파리서 선보인 ‘라이트 버드’

입력 2015-05-18 02:04
프랑스 안무가 뤽 페통이 안무한 '라이트 버드'가 지난 12일(현지시간) 파리의 국립 샤이요 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한국과 프랑스의 공동제작으로 이뤄진 이 작품은 내년 4월 서울에서도 선보일 예정이다. 르 귀테르 뤽 페통 컴퍼니 제공

“인간과 학이 함께 노닐며 춤을 춘다.”

한국을 비롯해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이상향에서 빠지지 않는 것은 학(鶴)이다. 범접할 수 없는 고고함을 가진 학은 ‘동래학춤’ 등 다양한 학춤에 영감을 제공하기도 했다. 그런데 인간과 학이 실제로 같은 무대에서 춤을 추는 작품이 프랑스에서 나왔다. 지난 5∼13일 파리의 국립 샤이요 극장에서 공연된 ‘라이트 버드(Light Bird)’다. 프랑스 뤽 페통이 안무한 이 작품에는 무용수 4명, 색소폰 연주자 1명 그리고 학 6마리가 출연한다.

막이 열리면 시공을 초월한 듯한 무대 위에 무용수들이 등장해 춤을 춘다. 학을 닮은 듯한 무용수들의 춤에는 이상향을 갈구하는 절실함이 느껴진다. 어느 순간 무대 옆에서 학 4마리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거나 뛰어 들어온다. 직접 출연한 페통을 포함해 무용수 4명과 학 4마리는 서로 대화하듯 움직임을 만들어 나간다. 이들의 모습은 음악, 조명 등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학 4마리가 무대에서 나간 뒤 또 다른 학 2마리가 무용수들 사이에서 다시 평화롭게 섞인다. 무대를 오가는 색소폰 연주자는 음악으로 무대를 충만하게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

안무가 페통은 지난 12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학과 무용수가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며 몸으로 대화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불멸을 상징하는 학과 유한한 생명을 가진 인간이 무대를 공유하는 것은 현실의 단절, 일종의 유보된 시간을 준다”고 말했다. 이어 “매일매일 변화하는 새들과 춤을 추려면 무용수와 뮤지션이 즉흥적인 방식에 익숙해져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하지만 자연과 인간의 불가분한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라이트 버드’는 내년 한국과 프랑스의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두 나라가 준비 중인 ‘한불 상호 교류의 해’ 행사로 마련됐다. 공연예술 분야에서 양국의 많은 작품이 상대 국가에서 공연될 예정인데, 이 작품은 합작으로 만들어져 의미를 더한다. 올해 파리를 비롯한 도시 투어 공연은 프랑스 버전이고 내년 2월부터 국악 작곡가 원일의 음악이 추가된 양국 합작 공식 버전이 무대에 오르게 된다. 서울에서는 내년 4월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올해 공연도 사실상 양국 공동 제작으로 만들어졌다. 페통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해 이선아, 박유라 등 무용수 2명을 뽑았으며 이번 파리 공연에도 원일이 제공한 국악 음원을 중간에 사용했다. 무용수 의상 역시 일부는 한국의 전통적인 마고자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다. 이선아는 “학이 정말 예민해서 음악의 변화나 무용수들의 감정 상태에 다르게 반응한다”며 “앞으로 한국 음악이 추가되면서 작품이 어떻게 바뀔지 궁금하다”고 했다.

프랑스 중견 안무가이면서 아마추어 조류학자인 페통은 2005년 살아있는 새들과 무용수의 춤을 연출한 ‘새들의 비밀’로 큰 주목을 받았다. 또 2012년 연극 ‘햄릿’에서 물에 빠져 목숨을 잃는 오필리아 이야기를 백조들과 함께 풀어낸 ‘스완’으로 프랑스 무용계의 주요 작품상을 휩쓰는 대성공을 거뒀다. ‘라이트 버드’는 그의 ‘새와 인간의 무용’ 연작 세 번째 작품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학의 보호를 촉구하는 목소리도 담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 아미앵 및 리옹 동물원의 협조를 받아 학의 부화 단계부터 작업이 시작됐으며 투어 공연을 마친 뒤에는 동물원에 다시 학을 돌려보낼 계획이다.

이 작품은 파리 초연 전부터 프랑스 무용계의 이목을 끌었다. 반응도 상당히 좋다. 프랑스의 주요 일간지 ‘르 몽드’는 “학을 기르는 등 2년간의 준비작업에서 나온 춤은 우아하다”고 평가했고, ‘레 제호’는 “무용수와 학이 만들어내는 조화가 눈부시다”고 칭찬했다.

파리=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