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남자’라는 단어는 어디에서든 힘과 권력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신앙생활에서는 한 발짝 물러나 아내를 따라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이름값도 못하는 남자들이 있다. 무려 10년 동안 ‘이름만 성도’였던 한 남자를 기억한다. 처음에 그는 아내를 교회 정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주일용 운전사’였고, 지난 5년간은 그나마 ‘수면제 먹은 예배자’로 예배당을 오갔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은혜를 받아 제대로 된 신앙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아내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면 자신 때문에 우는 것 같아 괜히 짜증내던 남자가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알겠다며 아내에게 미안해한다. 자신의 마음속에 있는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괜히 큰소리치고 거칠게 행동하던 옛 습관은 사라졌고, 이제는 힘들고 어려우면 아내에게 기도를 부탁하기도 한다. 성난 사자처럼 인상 쓰고 생활하던 남자는 부드럽고 평온한 표정을 소유한 ‘훈남’이 되었다.
예수님은 열두 명의 남자들과 함께 배에 타고 있었다. 예수님은 이내 잠드셨고, 때마침 광풍이 불어 물결이 출렁이자 배에 물이 가득하게 되었다. 위기일발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전히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열두 명의 남자들은 다급한 나머지 “주여 주여 우리가 죽겠나이다”(눅 8:24)하며 급히 예수님을 깨웠다. 많은 기적을 베푸셨던 분이 그들과 함께 있었음에도 제자들은 떨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풍랑 속 배 안에 갇힌 제자들의 얼굴에서 오늘날 남자들의 두려움에 찌든 표정이 스치는 것은 왜일까.
남자들은 어려서부터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 왔다. 학교에 들어가기 위해,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때에 맞게 승진하기 위해 늘 시험을 치러 왔다. 시험에서 남들에게 밀리면 원하는 학교와 직장에 들어갈 수 없고, 심지어 다니던 회사를 떠나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그래서인지 대부분의 남자들은 어렵게 올라온 이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밀리면 안 된다는 긴장감과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예상치 못한 인생의 풍랑이 자신의 삶을 흔들진 않을까 염려한다. 풍랑 속 배 안에 있던 열두 명의 남자들 중에 노련한 어부가 몇몇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기는커녕 사나운 풍랑과 배 안에 들어찬 물 앞에 그저 발만 동동 구를 뿐이었다.
이처럼 남자들은 삶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아간다. ‘가족에게 필요를 제공하지 못하는 상황에 부닥치면 어떻게 하지?’ 혹은 ‘지금 당장 건강에 큰 이상이 생기면 어떻게 하지?’ 등등 염려와 두려움이 떠나지 않는다. 생명을 위협하는 풍랑 가운데서 제자들은 죽겠다고 아우성쳤지만 예수님은 여전히 평안하셨다(눅 8:23). 제자들은 병을 고치고 귀신을 내쫓는 예수님은 보았지만 사나운 물을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님은 보지도 못했고 상상할 수도 없었다.
보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한 것에 믿음을 갖기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믿음 없는 남자들의 한계다. 자신이 보고 경험한 것만 믿는 것은 온전한 믿음이 아니다. 그 열두 명의 남자들에게는 예수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 없었다. 광풍의 위력으로 그들에게 닥칠 수 있는 위험은 본능적으로 알았지만 파도를 잠잠하게 하시는 예수님의 권세에 대해서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노련한 어부들이었기에 그 정도의 풍랑이라면 배를 뒤집을 수도, 사람을 집어삼킬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갇혀 예수님의 능력을 바라보지 못했기에, 순식간에 찾아온 두려움에 지배당하고 말았다.
남자들은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간다. 무한경쟁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낳고, 그 두려움은 생활 속 염려로 자리 잡는다. 염려는 흔들의자와 같아서 마음만 이리저리 흔들어 놓고 더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한다. 염려는 우리의 생각을 마비시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게 한다. 염려는 에너지와 시간만 소모하게 한다. 염려는 문제를 부풀려 과장하기도 한다. 염려가 들어서는 순간 문제가 더 크게 느껴진다. 솜사탕처럼 부풀려진 염려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최악의 상태가 되는 것이다.
남자들이여, 인생에 거센 광풍이 불어오고 있는가. 사나운 풍랑이 몰아치는 바다 같은 인생이지만 예수님과 함께 있으면 두려움이 아닌 평안에 붙잡힐 수 있음을 기억하자. 당장 나를 넘어뜨릴 것 같고 죽일 것 같은 일들이 수시로 에워싸며 위협할 수 있다. 그러나 나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내가 휘몰아치는 광풍에 휘둘려 좌절의 깊은 바다에 빠지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는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으로 인생의 광풍을 당당하게 맞서는 남자들이 되자.
이의수 목사(사랑의교회 사랑패밀리센터·남성사역연구소장)
[이의수 목사의 남자 리뉴얼] 출처를 알 수 없는 두려움
입력 2015-05-16 00: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