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예비군훈련장에서 총기를 난사하고 자살한 최모(23)씨는 사건 전날 밤 불침번을 서면서 유서를 쓴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다음날 웃으면서 방아쇠를 당겼다고 한다. 현장에 있던 예비군들은 언덕 아래로 굴러 떨어지듯 도망쳤다. 군 당국은 이들 예비군을 상대로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를 했다고 발표했으나 정작 생존자에게 현장검증을 해야 한다며 최씨 역할을 요구하기도 했다.
최씨는 지난 12일 밤 10시쯤 불침번을 섰다. 3층 중앙계단에서 점호를 마친 정모(26)씨는 담배를 피우러 가는 길에 그를 봤다. 하얀 피부에 안경을 쓴 최씨는 손바닥만한 종이에 뭔가 적고 있었다. 다음날 불침번이었던 정씨는 불침번이 할 일을 물어보려고 다가갔다.
“불침번에게 뭘 쓰라고 하더냐”고 묻자 최씨는 “편지를 쓰는 것”이라고 했다. 스프링노트에서 뜯은 듯한 메모지 2장이 보였다. 막 쓰기 시작한 것 같았다. 내용은 보지 못했다. 정씨는 더 묻지 않고 가던 길을 갔다. 이상한 표정이나 낌새는 전혀 없었다고 한다.
14일 퇴소한 정씨는 취재진에게 “예비군훈련을 와서 손편지를 쓴다는 점은 이상했지만 세상엔 이상한 사람이 많으니 그러려니 했다”며 “기사에 나온 유서 사진을 보니 그때 본 종이였다”고 말했다.
최씨와 같은 생활관을 쓴 예비군들 사이에서는 사건 전부터 최씨가 혼자 중얼거려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최씨는 각개전투 훈련을 할 때도 너무 열심히 해서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스스로 사격 자세를 취해보기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모(27)씨는 13일 사건이 일어난 사격장에 있었다. 최씨는 “1사로에 서고 싶다”며 박씨와 같은 줄로 갑자기 끼어들었다고 한다. 조 편성이 끝났다고 하자 “나는 1사로에서 사격이 더 잘된다”며 바로 뒷줄 1사로(좌측 첫 번째)로 들어갔다. 박씨는 14사로(오른쪽 네 번째)에서 사격을 했다.
총을 거는 고리는 쉽게 채우고 풀 수 있는 형태였다. 12사로였던 이모씨는 “조교가 확인하긴 했는데 조교 수가 부족했다”고 말했다. 현역병인 조교는 좌우 사로 양쪽에 3명씩 위치하고 중대장이 가운데 서서 통제했다. 소위 2명은 사격장 아래에 있었다. 사격장은 언덕 위에 있다.
최초 목격자는 2사로 부사수였다고 한다. 그는 최씨가 총구를 돌리는 걸 보고 사격장을 뛰어 내려갔다. 박씨나 이씨처럼 최씨와 비교적 멀리 떨어져 있던 사람들은 최씨가 총을 난사한 사실을 곧바로 알아채지 못했다. 사로의 예비군들은 귀마개를 하고 있었다.
이씨는 최씨가 자살할 때까지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고 한다. 그는 “사격장을 나가면서 엎드려 있는 사람들을 봤다. 사격중지 명령을 받았는데 쟤들은 왜 안 내려갈까 하고 생각했다. 내려갈 때까지도 안 일어나기에 그제야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고 말했다. 가까이 있었던 4사로 사수는 옆 사람 방탄모가 굴러 떨어져 사건을 알게 됐다고 한다.
사건 당시 김모씨는 사격장 아래 계단에서 다른 예비군들과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귀마개를 하지 않아 총소리를 들었다. 김씨는 “사로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는데 처음에는 ‘말벌, 말벌’ 하는 소리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자세히 들어보니 중대장이 ‘다 내려가’ ‘도망가’라고 소리치고 있었다”고 했다.
사격장의 예비군들은 비탈과 계단을 가리지 않고 쏟아져 내려왔다. 아래에서 대기하던 예비군들은 영문도 모르고 함께 뛰었다. 3사로 부사수로 알려진 예비군은 최씨가 자신에게 총구를 겨눴다가 웃으면서 머리를 쏘고 자살했다고 주변 예비군들에게 털어놨다. 군 관계자는 이 생존자에게 현장검증 때 최씨 역할을 맡아 달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한 예비군은 “피해자의 심적 고통 같은 건 전혀 생각 안 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강창욱 양민철 고승혁 김판
홍석호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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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군 훈련장 총기 난사] 최씨, 범행 전날 불침번 서면서 유서 써
입력 2015-05-15 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