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강기훈씨 무죄 확정… 24년 만에 벗은 누명 法·檢 사과는 없었다

입력 2015-05-15 02:38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 회원들과 변호인이 14일 서울 대법원 앞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간암 투병 중인 강씨는 재판에 참석하지 않았다. 김지훈 기자
“사건번호 2014도2946, 피고인 강기훈.” 14일 오전 10시24분 대법원 1호 법정에서 쉴 틈 없이 여러 사건의 선고 결과를 읽어 내려가던 김창석 대법관이 잠시 멈췄다. 그는 방청객과 취재진을 잠깐 둘러본 뒤 천천히 주문을 낭독했다. “검사의 상고를 기각합니다.” 짧은 박수소리가 났다. 재판부가 바로 다음 사건 선고로 넘어가면서 박수소리가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지지자들은 법정 밖에서 기뻐했다. ‘유서대필’ 사건 발생 24년 만의 무죄 확정판결이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강기훈(51)씨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3년간의 억울한 옥살이 이후 생긴 간암과 간경화 증세가 악화됐다고 한다. ‘강기훈의 쾌유와 명예회복을 위한 시민모임’(이하 시민모임)의 김선택 집행위원장은 “강씨는 사건이 언론에 오르면 신경이 날카로워진다. 3, 4일 전 선고 날짜가 잡혔다는 말을 듣고 어디에 가 있겠다고 한 뒤로 연락이 안 된다”고 말했다. 이날 강씨의 휴대전화는 내내 꺼져 있었다.

2008년 재심을 청구한 지 7년 만에 나온 대법원 판결문은 A4용지 4장 분량이었다. 대법원 2부(주심 이상훈 대법관)는 노태우정권 퇴진을 외치며 투신자살한 김기설씨의 유서와 강씨의 필체가 다르다고 판단했다. 강씨가 김씨의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에서 김씨의 유서를 강씨가 대필했는지는 핵심 쟁점이었다. 재판부는 유서의 ‘ㅎ’과 받침 ‘ㅆ’에서 드러나는 필체의 특성이 강씨 필체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강씨의 ‘화학노트’ 필적 또한 유서 필적과 달랐다.

유서대필 사건은 노태우정권 4년차였던 1991년 발생했다. 당시 정부의 공안통치에 반발하는 시국집회가 잇따랐다. 명지대 학생 강경대씨 사망사건에 분개한 대학생들이 잇달아 분신했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는 그해 5월 8일 서강대 본관 옥상에서 몸에 불을 붙이고 투신했다. 옥상에서 유서 2장이 발견됐다. 검찰은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씨를 유서 대필자로 지목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유서의 필적이 강씨의 것과 유사하다고 감정했다.

운동권은 동료에게 자살까지 종용하는 비윤리적 집단이라는 낙인을 떠안으며 치명상을 입게 됐다. 정국은 역전됐다. 강씨는 김씨의 자살을 종용하지도, 유서를 대신 쓰지도 않았다고 항변했지만 법원은 이듬해 징역 3년에 자격정지 1년6개월을 선고했다. 유서대필 사건에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는 별칭이 붙은 것도 이즈음부터다.

사건은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통해 재조명됐다. 진실화해위는 김씨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입수했다. 국과수는 재감정을 해 유서 필적이 김씨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놨다. 기존 감정과 상반된 것이다. 강씨는 이를 근거로 2008년 5월 서울고법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나 검찰은 2009년 서울고법의 재심개시 결정에 불복하고 항고했다. 대법원은 3년이 지난 2012년에야 재심개시를 최종 결정했다. 재심을 맡은 서울고법은 지난해 2월 강씨의 자살방조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강씨의 유죄를 주장하며 대법원에 다시 상고했다. 공방이 이어지는 동안 강씨는 간암 판정을 받았다.

부실한 감정을 근거로 강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던 법원은 무죄 판결을 확정하면서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선고 결과를 알릴 때의 ‘짧은 침묵’ 외에 유감표명을 감지할 만한 장면도 없었다. 마지막까지 강씨의 유죄를 입증하려 했던 검찰은 “증거판단에 아쉬움이 있지만 대법원의 판단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 짤막하게 평가했다.

강씨를 변호한 송상교 변호사는 “검찰은 선배들이 했던 일을 정당화하는 데 급급했고, 대법원도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3년간 재심개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사를 지휘했던 강신욱 당시 서울지검 강력부장은 2000년부터 대법관을 지냈다. 주임검사였던 신상규 변호사는 2009년 광주고검장을 지낸 뒤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당시 법무부 장관은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강씨는 지난해 서울고법의 무죄 선고 직후 “재판부가 유감을 표시하지 않는 것이 유감”이라며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어렵지만 검찰이 어떤 형태로든지 유감 표시를 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었다. 송 변호사는 향후 손해배상 청구 등 국가 책임을 묻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정현수 나성원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