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14일 비노(비노무현) 진영을 ‘지도부를 흔들어 공천 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세력’으로 묘사하는 듯한 메시지를 발표하려 했던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내 내홍이 더 깊어지는 모양새다. 지도부의 만류로 입장 발표는 취소했지만 메시지 내용이 다 노출돼 계파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지도부 흔들기 도를 넘었다”=문 대표는 오후 1시30분쯤 긴급 비공개회의를 소집하고 ‘당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입장문 초안을 회의 참석자들에게 회람했다. 초안에는 비노 진영의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공격을 작심하고 반박하는 듯한 내용이 많았다.
초안에는 문 대표 자신도 내년 총선 공천에 관여하지 않을 것이며, 자신의 수족을 잘라내고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표명되기도 했다. 그러나 비노 진영의 ‘패권주의’ 청산 요구의 본질이 결국 내년 총선 공천권을 겨냥한 ‘문재인 흔들기’라는 친노 진영의 인식을 그대로 반영했다고 해석될 소지가 상당부분을 차지해 비노계의 강력한 반발이 예상된다.
입장문에는 “패배의 책임을 막연하게 친노 패권주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 온당한지 묻고 싶다” “새누리당이 우리를 상대로 종북몰이 하듯이 우리 내부에서 막연한 ‘친노 패권주의’ 프레임으로 당을 분열시키고 악화시켜서는 안 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4·29재보선 패배 후 비노 진영의 문제제기를 여당의 ‘종북몰이’에 비교한 것이다.
또 “당 일각의 지도부 흔들기는 지금 도를 넘었다” “혹여 지도부를 무력화시켜 기득권을 유지하려 하거나 공천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사심이 있다면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패권주의를 성토하며 패권주의를 보이는 행태야말로 ‘역패권주의’”라는 격한 표현까지 사용됐다. 현재의 당내 혼란을 지도부 흔들기를 통해 20대 총선 공천권을 확보하려는 비노계의 공격으로 해석하는 듯한 대목이다.
문 대표는 전날 비노의원 모임인 ‘민집모’(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 소속 의원들과의 오찬 후 “부당한 공격과 흔들기에는 물러서지 않고 정면 돌파하겠다” “나를 계파수장으로 몰아 공천권을 전횡하려는 것으로 호도하는 것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지도부의 한 의원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아무리 특정인의 의견이라고 하지만 그 자리에서 공천권 얘기가 나왔다는 점에서 대표로서 참담함과 분노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비노, 태연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부글부글’=유보됐던 문 대표의 입장 표명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비노 진영도 크게 술렁이는 듯한 분위기다. 공식 입장 발표가 아니라는 이유로 집단적 반발은 드러나지 않았지만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않았다.
2·8전당대회에서 문 대표와 치열하게 경쟁했던 박지원 의원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문재인 대표의 발표, 발송되지도 않은 메시지에 대해 제가 코멘트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생각합니다”라면서도 “단, 차기 총선 공천 혹은 지분 운운은 사실도 아니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기에 앞으로도 거론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고 적었다. 호남의 한 비노계 의원도 “(문 대표가) 공식 입장 발표를 유보하셨다니 우리도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면서도 “(비노 진영의 쇄신 요구를) 공천과 관련된 일로 받아들였다면 대표가 단단히 착각하고 오해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비노 일각에서는 “당 대표가 지도부에 회람시킨 메시지는 대표의 의중이 그대로 담긴 것이며, 최고위에서 만류한 메시지가 흘러나온 것 자체가 비선 정치를 하고 있다는 방증”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정청래 징계 여부는 20일 결정될 듯=당 윤리심판원은 ‘공갈 발언’으로 제소된 정청래 최고위원에 대한 징계 여부를 오는 20일쯤 결정할 예정이다. 윤리심판원은 오후 3시 첫 회의를 열고 지난 11일 징계요구서 접수 이후 진행된 직권조사 내용을 보고받았다. 윤리심판원은 ‘공갈 발언’뿐 아니라 같은 당 박주선 의원을 SNS상에서 비난한 것에 대한 징계 요구가 접수됨에 따라 두 건을 묶어 심의했다. 1차 회의에서는 정 최고위원의 징계 수위에 대한 논의는 없었다. 심판위원들은 오는 20일 예정된 2차 회의에 정 최고위원을 불러 직접 소명을 듣고 징계 여부를 의결할 계획이다.
윤리심판원장 강창일 의원은 회의에 앞서 기자들과 만나 “윤리규정에 따라 법적인 판단을 할 것이며, 정치적 고려나 사사로운 감정에 이끌리지 않겠다”며 “이런 문제로 오래 끄는 것은 좋지 않다”며 신속한 처리를 시사했다. 윤리심판원 민홍철 간사는 “본인 소명까지 듣고 나서 그 결과를 가지고 징계 여부, 그리고 혐의가 인정되는 경우 징계 수위까지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임성수 최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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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부당한 흔들기 정면돌파” 입장 표명하려다 보류
입력 2015-05-15 02: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