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렁이는 270만 예비군들… 총기 난사 사건에 “훈련 연기” “사격 안하겠다”

입력 2015-05-15 02:48
군 관계자와 취재진이 14일 서울 내곡동 강동·송파 예비군훈련장에서 총기난사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가해자 최모씨가 있던 1번 사로 주변에 핏자국이 가득하다. 김지훈 기자

예비군훈련 총기 난사 사건에 270만 예비군이 술렁이고 있다. 예비군 부대마다 훈련 참가를 연기하거나 참가해도 사격훈련은 피하려는 문의가 잇따르고 있다. 겨우 ‘안전히’ 제대했는데 다시 ‘목숨’을 걸 수 없다는 ‘예비군 공포’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14일 오전 서울 남부권 예비군훈련장에 입소할 예정이던 직장인 박모(31)씨는 오전 8시쯤 훈련장을 직접 방문해 연기 절차를 밟았다. 3월부터 향방작계훈련을 미뤄온 터라 불참하면 고발될 처지였다. 그러나 1년에 한 번 허용되는 ‘신고 후 불참’ 절차를 밟으면 한 차례 더 연기된다는 말을 듣고 급히 왔다고 했다. 박씨는 “현역 때도 안 맞은 총을 예비군훈련에서 맞을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느냐”며 “또 어떤 사고가 날지 몰라 이번 훈련은 연기했다”고 말했다.

각 지역 예비군동대에는 관련 문의가 쏟아졌다. 총기사고 훈련장과 인접한 서울 송파2동 예비군동대 관계자는 “(훈련에) 꼭 나가야 하느냐고 묻는 전화가 여러 통 걸려와 다음에 참여 가능한 날짜를 알려줬다”고 했다.

훈련을 미룰 수 없다면 사격만이라도 빠지겠다는 예비군도 많다. 이날 서울 노원구 덕릉예비군훈련장에서 보충훈련을 받은 이모(28)씨도 “불참하면 고발되기에 어쩔 수 없이 훈련은 받았지만 사격은 ‘몸이 안 좋다’ 하고 빠졌다”고 했다. 21일 예비군훈련을 앞둔 박모(30)씨는 “예비군 6년차까지 빠짐없이 사격을 했는데 이번엔 ‘열외’할 생각”이라며 “마지막 훈련인데 괜히 목숨을 걸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두 달 뒤 훈련을 받아야 하는 심모(22)씨도 “이번 사건이 ‘학습효과’를 일으켜 누군가 또 나쁜 맘을 먹으면 어떡하냐”고 불안해했다. 이들은 적절한 대책을 찾지 못하는 군 당국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예비군 4년차 김모(31)씨는 “매번 훈련 때마다 날림, 생색내기 프로그램이 이어졌는데 이번 사태는 그런 게 누적돼 터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육군은 이번 사건이 가해자 최모(23)씨의 계획 범행이었다는 내용의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육군 중앙수사단장 이태명 대령은 “지난달 22일 최씨가 친구에게 ‘5월 12일 난 저세상 사람이야. 안녕’ 등 구체적 날짜와 함께 자살을 암시하는 문자메시지 10건을 보낸 것으로 파악됐다”고 밝혔다. 현장에 배치된 군인들은 사고를 막기는커녕 도망치기 급급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대령은 “대위 3명과 현역병 6명은 총구를 예비군들이 안전 고리에 정확히 채웠는지 확인하지 않았다”며 “사고가 나자 사격장 통제실 뒤편으로 숨는 등 모두 대피했고 사고 당시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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