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났지만 떠난 게 아니다. 론스타가 한국에서 철수한 지 수년이 흘렀으나 각종 소송을 통해 여전히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다. 한국을 뜨자마자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5조원대 소송을 내 15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첫 심리가 열린다. 이뿐 아니라 국내에선 국세청과의 세금 소송이 지루하게 계속되고 있다.
론스타와 한국, 인연의 시작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는 1998년 한국에 발을 들였다. 외환위기로 기업이 도산하고 부실채권이 급격히 늘어나는 틈을 타 자산관리공사와 예금보험공사 등으로부터 부실채권을 사들였다. 2003년 카드대란 땐 5조원에 달하는 카드채권을 매입했다. 론스타는 이를 되팔아 쏠쏠한 수익을 챙겼고, 이후엔 부동산에 투자했다. 특히 2001년 현대산업개발로부터 6330억원에 인수한 스타타워를 3년 뒤 9450억원에 팔아 3120억원을 남겼다.
금융기관 인수에도 관심을 보였다. 2002년 서울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다 실패한 뒤 바로 외환은행으로 눈을 돌려 1조3834억원에 2003년 외환은행 대주주가 됐다. 당시 은행법은 외국계 산업자본이 10% 이상 은행지분을 보유할 수 없도록 규정했지만, 당시 금융감독위원회는 예외 조항을 들어 매각을 승인했다. 론스타는 2006년 국민은행, 2007년 HSBC 등과 매각협상을 했으나 결렬됐고, 2012년 하나금융지주와 3조9157억원에 매각 계약을 체결했다. 배당금과 지분매각 대금 등으로 론스타는 4조6635억원을 번 뒤 한국을 떠나 외국자본 ‘먹튀’의 대명사가 됐다.
떠난 뒤 시작된 악연, 한국 정부와 5조원대 ISD 시작
15일부터 열흘간 워싱턴DC에서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 첫 번째 구두심리가 진행된다. 론스타는 2012년 11월 한국 정부가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지연하고 부당하게 과세해 손해를 봤다며 ICSID에 중재를 신청했다. 소송 가액은 46억7900만 달러(5조1000억원)에 달한다.
최대 쟁점은 정부의 지연 행위가 있었는지다. HSBC와 매각협상을 하며 외환은행 지분 51%를 5조9376억원에 매각하기로 했으나 정부가 승인을 미루면서 HSBC와 계약이 파기돼 손해를 봤다고 론스타는 주장한다. 한국 정부는 당시 론스타 헐값 매각과 외환카드 허위감자설 유포 등과 관련한 사법절차가 진행돼 섣불리 매각 승인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고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덕수 전 경제부총리와 김석동 전 금융위원장,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 전태신 전 국무조정실장, 김승유 전 하나금융지주회장 등 당시 금융정책 라인 최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ISD 증인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또 론스타는 ‘한·벨기에 투자협정’을 들어 과세가 부당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론스타는 벨기에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해 외환은행, 스타타워, 극동건설 등을 매매하는 과정에서 차익을 챙겼다. 현재 국내에서 원천징수 당한 세금을 돌려 달라는 소송이 진행 중이다.
예견된 일이었다는 목소리가 다시 나온다. 산업자본인 론스타가 은행 경영보다는 투자 목적으로 들어왔고, 벨기에를 내세워 세금을 회피할 수 있는 정황이 명백했음에도 매각을 승인했다는 주장이다. 정부가 ISD 진행 상황을 일절 공개하지 않는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그동안 정보공개를 수차례 청구하고 외교부를 상대로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정부는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론스타는 싱가포르 중재재판소에도 제소했다. 외환은행에 배상금 구상권을 청구하기 위해서다. 2003년 외환카드를 외환은행과 합병하는 과정에서 매각대금을 줄이기 위해 외환카드 허위감자설을 유포해 주가를 고의로 낮춘 혐의로 론스타는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았다. 외환카드 2대주주였던 올림푸스캐피탈은 싱가포르 중재재판소에 손해배상을 신청해 결과에 따라 론스타는 713억원을 물어줬다. 이후 론스타는 같은 재판소에 외환은행을 상대로 배상금 구상권 중재를 신청했다. 재판소는 외환은행이 배상금 절반 이상을 론스타에 주도록 했고, 외환은행은 430억원을 지급했다.
국세청과의 끝없는 세금전쟁
론스타는 국세청과 총 8000억원대의 세금소송을 진행 중이다. 크게 스타시티 매각 관련 소송과 외환은행 지분 매각 관련 소송으로 나뉜다.
국세청은 론스타가 스타타워를 매각해 남긴 차익에 대해 1017억원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했다. 소송 끝에 2012년 론스타는 세금을 돌려받았다. 대법원은 “법인에는 (부동산) 양도소득세가 아닌 법인세를 부과하는 것이 맞는다”고 판결했다. 국세청은 바로 1040억원대의 법인세를 부과했다. 1심에서 서울행정법원은 벨기에 법인이 조세회피 목적으로 세워졌고, 론스타가 미국에 기반하고 있어 한·미 조세협약에 따라 납세의무를 진다고 결정했다.
외환은행 지분 매각 소송은 1차 매각(13.6%)에 대한 1192억원대 법인세 소송과 2차 매각(51%) 3876억원 양도세 소송 두 건이다. 1차 매각과 관련한 소송에서는 1심에서 론스타가 승소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부장판사 김병수)는 “론스타가 국내에서 실질적으로 고정사업장(법인)을 보유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에 한국의 과세권이 배제되며, 한국에 납세의무가 없다”고 판시했다.
2차 지분 매각 재판 역시 론스타에 유리하게 돌아갔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문준필)는 남대문세무서가 론스타에 1772억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남대문세무서는 론스타가 외환은행 주식을 매각하자 대금의 10%를 원천징수했다. 재판부는 LSF-KEB는 벨기에 법인이고, 매각대금이 미국으로 가기 때문에 한국에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론스타 주장을 받아들였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
[Wide&deep] 또 맞붙는 정부-론스타… 5조 걸린 ISD 美서 막오른다
입력 2015-05-15 0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