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지도력이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으로 기정사실화된 그의 공포정치 외에는 집권 4년차에도 뚜렷한 업적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물려준 ‘유훈’조차 지키지 못한다는 혹평도 나오는 형국이다. 즉흥적·비대칭적·불연속적 통치 스타일이 장기적으로는 체제 불안만 키울 것이라는 우려다.
◇‘유훈정치’의 실패…활용되지 않는 ‘벼랑끝 전술’=김 제1비서는 2011년 김 위원장이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유훈정치’를 내세워 3대 세습 권력을 세웠다. 최고 지도부의 주요 보직에 ‘김정일의 사람’들을 앉히고, 선군정치와 핵개발·경제개선 병진노선을 취한 것이다.
그러나 혈맹 중국·러시아와의 ‘운명 공동체’ 관계 유지, 핵무기 개발을 체제 보장의 최후보루로 삼는 ‘벼랑끝 전술’ 등 아버지의 최대 유산은 활용되지 않고 있다는 게 북한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 제1비서는 집권 이후 단 한 번도 중·러를 방문하지 못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이 핵무기 개발을 집중 견제하자,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도모하기보다 “우리 갈 길을 갈 것”이라며 특유의 자존심을 내세웠다. 2013년 시진핑 주석 특사가 평양을 방문했을 때도 김 제1비서는 “중국 우려를 고려하겠다”는 메시지를 결코 던지지 않았다.
최근 관계개선 분위기가 역력했던 러시아와도 실질적인 진전은 보지 못하고 있다. 경제 분야에만 관심을 갖는 러시아가 북한의 호전적인 핵개발 의도에 발을 빼자, 김 제1비서는 이달 초 모스크바에서 열린 전승 70주년 기념식에도 가지 못했다. 오히려 중·러는 북한보다 남한 쪽에 더 많은 힘을 실어주는 형국이다. 이로 인해 북한은 김정일 집권 당시보다 더 고립된 ‘폐쇄국가’로 고착되는 상황이다.
김 제1비서는 미국과의 체제보장 협상에 적극적이던 아버지와도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 위원장은 1994년 1차 핵협상을 시작으로 고비 때마다 벼랑끝 전술로 미국과의 ‘빅딜’을 시도했다. 벼랑끝 전술의 핵심은 미국이 북한 체제의 연속성을 보장하고 대북 수교에 나설 경우 핵무기 개발을 포기한다는 것으로, 지금까지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북핵 해결을 위한 6자회담 등 한반도 주변국의 다양한 양보를 얻어냈다.
그러나 김 제1비서는 이 같은 아버지 시대의 협상방식에 전혀 집착하지 않고 있다. 집권 이후 3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대미 접촉을 시도하지 않았고, 6자회담 복귀에 대한 의지도 보이지 않았다. 핵무기 개발을 체제 보장을 위한 벼랑끝 전술의 ‘도구’로 사용하기보다는 남한과 미국을 직접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겠다는 의도라는 것이다.
◇공포정치, 기득권층의 신뢰 상실 야기=김 제1비서의 공포정치는 취약한 지지기반에 기인한다. 아버지 시대의 집권층을 숙청한 자리에 자기 사람을 채워야 하는데, 믿고 맡길 만한 인맥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양한 인물을 등용했다 ‘불충’의 기미만 보여도 다시 자리바꿈을 한다는 것이다.
전임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한 북한전문가는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김정은은 정책이든 인물이든 아버지의 유훈으로 여겨지는 것들에 대해 전면 재검토를 하는 듯 보인다”면서 “이 과정에서 처형과 숙청 카드가 남발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당장은 권력층이 충성심 외에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겠지만, 길게 보면 ‘과연 김정은이 최고지도자 감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될 소지가 다분하다”고도 했다.
극동문제연구소 김동엽 연구교수는 “김정은 정권은 지난 3년의 ‘허니문’ 시기 때만큼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올해 정권이 지속적인 안정이냐, 불안정의 시작이냐의 중요한 변곡점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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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15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