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행전] 나는 이렇게 아버지가 됐다… 마치 영화처럼 ‘세 가족 이야기’

입력 2015-05-16 00:36
아버지는 자녀와 시간을 함께 보낼 때 비로소 아버지가 되어간다. 그 과정이 낯설고 지칠테지만, 아버지 역할은 누구도 대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진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의 포스터.
박종태 장로·딸 다혜
손원영 교수·아들 성현
진성구 집사·딸 윤지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보면 환경이 다른 두 아버지가 등장한다. 성공한 건축가로 최고급 아파트에 사는 ‘료타’는 아들 ‘게이타’를 누구보다 잘 키우기 위해 사립학교에 보내고, 피아노를 열심히 가르친다. 하지만 그에겐 아들과 같이 보낼 시간적 여유가 없다.

반면 ‘류다이’는 전파상을 운영하며 ‘류세이’를 비롯한 세 아이를 키우는 가장이다. 약간 무능해 보이지만 정 많고 너그럽다. 좁은 욕조에서 아들과 목욕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연을 같이 날린다. 놀이방에선 온몸으로 놀아주는 영락없는 ‘자식바보’다.

이 영화는 2013년 개봉됐지만 최근 ‘가정의 달’ 특선으로 안방극장을 찾았다. 병원에서 뒤바뀐 아이와 가족이야기를 담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정의를 다시 써내려간 작품으로 새삼 주목받았다. 료타는 “아들과 시간을 보내라”는 류다이 말에 정색하며 답한다. “내가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 있어서”라고. 그러자 류다이가 대꾸한다. “아버지란 일도 다른 사람은 못하는 거죠.”

숭실사이버대 청소년코칭상담학과 마상욱 겸임교수는 “아이들에게 최고 아버지는 성공한 아버지가 아니라 시간을 함께하는 아버지”라고 말했다. 5월이 가기 전, 나는 어떤 아버지로 살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자. 엄격하고 무뚝뚝한지, 바쁜 뒷모습만 보여주는 아버지는 아닌지, 주말엔 누워만 지내는지….

[여행으로 엉킨 실타래를 풀다] 박종태 장로·딸 다혜

“아빠, 저 학교 안 다닐래요.” 2010년 여름, 비전북출판사 대표 박종태(55·일산동산교회) 장로는 중1 딸아이에게서 이런 충격 고백을 들었다. 인천의 한 기독교 대안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던 딸 다혜(23)를 학교 앞까지 데려다줬는데, 아이는 갑자기 무릎을 꿇고 엉엉 울면서 말했다.

“아빠는 나를 사랑하지 않는 거 같아요. 사랑한다면 힘들고 적응 못하는 나를 이렇게 학교까지 데려다줄 수 없잖아요.” 아빠는 겨우 딸을 달래 차를 돌려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가족회의를 열었고, 다혜는 학교를 그만뒀다. 박 장로는 “딸아이가 원해서 기숙학교에 보냈는데, 어린 마음에 부모와 떨어져 지내는 게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하지만 내가 좀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아이가 마음을 다치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딸을 위로하고 관계 회복을 위해 박 장로는 ‘아빠와 딸의 여행’을 계획했다. 그해 10월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로 이어지는 15일간의 유럽여행. 스위스 융프라우에 올라 비로소 아버지는 딸에게 하고픈 이야기를 꺼냈다. “다혜야? 지금 많이 힘들지? 그렇지만 이런 시간들이 네 인생에 밑거름이 될 거야. 아빠는 다혜가 모든 걸 극복하고 잘 일어설 거라고 믿어. 사랑한다.”

박 장로는 여행을 통해 딸과 엉켰던 실타래를 풀었다. “부모는 자녀들이 생각하는 문제들을 시답잖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나 역시도 그랬으니까요. 분명한 건 아빠가 눈높이에 맞춰 함께 고민하고 공감하면 아이들은 달라집니다.”

자녀와 얽힌 문제를 풀어가는 동기는 관심과 지지다. 그렇게 아버지는 엉킨 실타래의 첫 올을 풀었고 딸이 해결해 나갔다. 여행에서 돌아온 다혜는 스스로 검정고시 학원에 등록했고 지금은 어엿한 대학생이 됐다.

[SNS로 소통의 문을 열다] 손원영 교수·아들 성현

서울기독대 손원영(50) 교수는 논문을 쓰고 미국에서 유학하느라 어린 아들에게 ‘아빠와의 추억’을 만들어주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아버지에게 여유가 생겼을 땐, 어느새 훌쩍 커버린 아들이 부모 품을 떠났다. 충북 음성 영어대안학교에서 기숙생활을 하던 아들이 중3 때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와 아들 사이에는 뭔가 끈끈함이 부족한 거 같아요. 솔직히 뚱한 아들이 어렵기도 했고요.” 아들이 미국 가기 전 아버지에게 제안했다. 페이스북을 통해 연락하자며 페북 가입을 권유한 것. 손 교수는 페북을 보며 아들의 근황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아들 친구 명단에서 제외된 겁니다. 섭섭한 마음에 왜 그랬냐고 따졌지요. 아마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았던 거 같아요. 아들이 다른 말 안 하고 ‘받아보기 기능으로 아빠 글 다 보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생각했지요. 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보자고요.”

손 교수는 아들과 친해지려고 페북에 자신을 드러냈다. 많이 쑥스러웠다. 어렸을 때 유학신봉자인 아버지와 겪었던 갈등, 화해 이야기, 어머니의 재혼, 왼손잡이의 애환…. 아들에게 평소 하지 못한 이야기를 글로 풀어 페북에 올림으로써 그렇게 아버지의 존재를 알렸다.

2년 전 안식년을 미국에서 보내고 귀국할 때, 아들이 손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버지 안녕히 가슈.” 단문으로 무뚝뚝하게 말하던 평소와 달리 아들이 부드럽게 말했다. 아들에게서 변화가 일어났음을 아버지는 느낄 수 있었다.

올해 아들 성현(20)은 대학생이 됐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찍어둔 동영상을 엿볼 기회가 있었다. ‘누구를 존경하는가?’란 질문에 성현은 “아버지”라고 답했다. 아들의 그 또렷한 음성이 아버지 가슴에서 메아리쳤다.

[‘아버지학교’서 훈련을 하다] 진성구 집사·딸 윤지

리더스브레인 학습클리닉 원장 진성구(49·양광감리교회) 집사는 바쁜 아버지였다. ‘열심히 일해 돈 많이 벌어 우리 가족 잘 먹고 잘살면 된다’는 게 아버지의 역할인 줄 알았다. 밤낮 가리지 않고 일했다. 회사에선 능력을 인정받았지만 그의 가정은 병들어가고 있었다.

“외박이 잦다보니 아내의 불만이 쌓였지요. 늦게 집에 들어가 아내와 다투는 일이 잦아지면서 아이들은 아빠 엄마의 눈치만 살피게 됐고요. 특히 술에 취해 들어와 언성을 높이면 놀란 아이들이 겁에 질린 눈으로 저를 쳐다봤습니다.”

가족을 위한다고 한 일이 이혼 위기로 나타났다. 그때가 2005년 11월. 우연히 지인을 통해 서울 대조동순복음교회에서 열리는 ‘서부15기 아버지학교’를 소개받았다. 입학 첫날 숙제가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편지쓰기’. 그의 기억 속에 아버지는 낮과 밤의 모습이 달랐다. 사람 좋고 자상한 아버지가 밤만 되면 술에 취해 주정 부리고 어머니를 폭행했다.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가득 안고 살았는데, 우리 아이들에게 비친 내 모습이 딱 아버지를 닮았더라고요. 내 욕심 때문에 얼마나 가족의 마음을 아프게 했는지 깨달았습니다.”

아버지학교를 수료하고 딸 윤지(18)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다. “아빠가 술도 끊고 담배도 끊고 우리하고 더 많이 놀아줘서 아빠가 참 좋아요.”

그렇게 관계를 개선했는데, 요즘 진 집사에겐 남모를 고민이 있다. 몇 년 전 엄마에게 대드는 딸을 심하게 체벌한 이후 3년 넘도록 서먹하다는 것. 진 집사는 “미안하다고 어려 차례 편지를 써봤는데 아직까지도 딸과 어색하다”고 털어놓았다. 윤지에게 더 좋은 아버지가 되기 위해 그는 그렇게 아버지학교에서 지금도 봉사하며 배우고 있다.

노희경 기자 hk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