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 갈등 해법을 찾자] 보험료 인상 없는 소득대체율 상향은 허언이다

입력 2015-05-15 02:43

요즘 국민연금을 둘러싼 정치권의 싸움에서 보이는 건 ‘50%’라는 숫자뿐이다. 야당은 소득대체율을 50%로 상향 조정하는 게 노후소득 보장의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얘기한다. 청와대는 1702조원의 세금폭탄을 던지는 것이라며 ‘50% 상향’을 반대하고 있다. 국민연금의 노후 보장성을 높이는 방법은 과연 ‘소득대체율 50%’뿐일까.

◇야당과 청와대,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야당은 보험료율을 1.01% 포인트만 올려도 소득대체율 50%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추가로 푼돈을 부담하면 목돈으로 돌려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 고갈 시점을 2060년으로 고정해 두고 계산한 결과다. 달콤하게 들리지만 상식적으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보건복지부는 “야당이 전제로 하는 ‘2060년 기금 고갈’은 장기 재정추계 결과일 뿐”이라며 “고갈 시점을 2060년으로 정해 놓고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을 계산하는 것은 잘못됐다”고 반박한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소득대체율을 10% 포인트 높이기 위해 보험료율을 1% 포인트만 올리면 된다는 이야기는 수학적 계산이지 정책에서 다룰 내용은 아니다”고 했다.

청와대의 ‘1702조원 세금폭탄’ 주장도 다를 바 없다. 자의적 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천문학적인 숫자는 2016년부터 2080년까지 65년 동안 추가로 들어갈 돈을 모두 더한 것이다. 보험료율을 현행 9%로 고정한 채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릴 경우를 전제로 한다. 특히 사회보험인 국민연금에 ‘세금’이라는 표현을 끌어다 쓴 것은 ‘증세’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민감정을 교묘하게 자극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문형표 복지부 장관의 ‘보험료율 2배 상향’ 발언도 2100년 이후까지 기금을 보유한다는 것을 전제로 한 발언으로 사실상 ‘공포 마케팅’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논쟁에서 누구도 보험료 인상을 거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야당은 불과 1.01% 포인트 올리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한다. 청와대와 정부는 현 시점에서 보험료 인상 가능성을 닫아두고 있다. ‘소득대체율 50%’ 논의가 겉도는 이유는 이처럼 보험료율은 건드리지 않고, 서로 하고 싶은 이야기만 하기 때문이다.

◇소득대체율 50%, 노후소득 보장할까=그렇다면 보험료율 상향 가능성을 열어두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어떻게 될까. 당연한 결론이지만 보험료가 오른다. 연금을 더 받으려면 그만큼 더 내는 게 합리적이다. 여러 변수를 고려했을 때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현 시점에서 보험료율은 10∼15% 수준이 적당하다는 게 상당수 전문가의 의견이다. 문형표 장관도 적절한 보험료율 수준을 12∼13%라고 언급했다. 참여정부가 2007년 준비했던 연금개혁안도 소득대체율 50%, 보험료율 12.9%였다. 당시 여야는 이를 부결시키고 소득대체율 40%(2028년까지 단계적 인하)와 보험료율 9% 안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국민연금 골격이 만들어졌고, 이런 논쟁이 불거졌다.

문제는 보험료를 더 내서 소득대체율 50%를 확보해도 충분한 노후소득 보장을 확신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산술적으로 재직기간 월평균 소득 300만원인 사람이 25년간 근무했을 경우 소득대체율 40%를 적용하면 매달 75만원의 연금 수급을 예상할 수 있다. 소득대체율 50%에서는 월 93만7500원이다. 약 18만∼19만원 오르는 효과가 발생한다. 노후 보장성이 커지지만 늘어난 연금액이 충분하다고 여길 사람은 많지 않다. 보건사회연구원의 최근 연구는 적절한 노후 소득을 월 153만원(2010년 가치 기준)으로 제시했다.

◇소득대체율 올리면 '연금 양극화' 가능성=여기에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를 올리는 일이 다른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연금 양극화' 현상이다. 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반드시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하는 '당연가입자'는 약 2113만명이다. 이 가운데 소득이 없다고 여겨지는 납부 예외자가 457만명, 1년 이상 장기 체납자가 112만명이다. 약 569만명(26.9%)은 노후에 국민연금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전업주부, 18∼26세 학생, 군인 등 1084만명은 원하면 가입할 수 있는 '임의가입 대상자'지만 보험료를 내지 않고 있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이 오를 경우 이탈자는 더 늘게 된다. 반면 중산층 이상의 고소득자는 '더 내고 더 받는' 연금 구조를 실현해 연금 소득이 증가한다. 젊었을 때의 소득 양극화가 노년에도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야당은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아낀 정부 재정을 저소득층 국민연금에 지원하자는 입장이다. 다만 이런 조치가 연금 양극화를 어느 정도 해소할지는 명확하지 않다.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연금재정 고갈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7월 발표한 보고서에서 '국민연금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2053년부터 연금을 받는 사람이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많아진다. 국민연금 가입자와 수급자 비율은 올해 100명 대 21명이다. 2066년 100명 대 126명으로 치솟은 뒤 하향 안정세를 보일 전망이다. 보고서는 "보험료율을 높이거나 소득대체율을 낮춰 연금액을 줄인다고 해서 국민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지 못한다"며 "적립금 고갈 시점을 늦출 수 있으나 인구 구조가 바뀌지 않는 한 국민연금은 고갈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소득대체율 50% 프레임에서 벗어나야"=전문가들은 현재 국민연금을 둘러싼 '소득대체율 50%' 논쟁의 프레임이 잘못 짜였다고 꼬집는다. 숫자에 매몰되기보다 노후소득 보장과 연금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논의하는 게 더 생산적이라는 얘기다.

대표적으로 현재 월 408만원인 보험료 부과 소득 상한선을 올리자는 주장이 나온다. 고소득자가 보험료를 더 내고 연금을 더 타게 하는 길을 열어주자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기본적으로 소득 재분배 기능을 갖고 있다. 고소득자가 보험료를 더 내면 저소득층에게도 혜택이 돌아간다. 정창률 교수는 "소득대체율 상향 조정 논의는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더 쌓였을 때 해도 늦지 않다"며 "1인 1연금 체제를 강화하거나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기간에 정부가 대납해주는 크레디트 제도 자체를 재정비하는 게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