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 ‘유서대필’ 사건의 강기훈씨가 완전히 누명을 벗었다. 대법원이 14일 유서대필과 자살방조 혐의로 기소된 강씨에 대한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서울고법이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의 필적감정 결과가 신빙성이 없다”며 무죄 선고한 것을 그대로 인정한 것이다. 사건 발생 24년 만이고 재심을 청구한 지 7년 만이다. 늦게나마 진실이 밝혀져 다행이다.
이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으로 불린다. 강씨는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동료였던 김기설씨가 1991년 5월 노태우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분신했을 때 기소됐다. 검찰은 김씨가 남긴 유서가 평소 김씨의 필적과 다르다며 유서 대필자로 강씨를 지목했다. 국과수도 김씨 유서와 강씨 진술서의 필적이 같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사법부도 무죄를 주장하는 강씨의 목소리를 귀담아 듣지 않았다. 결국 그는 1992년 징역 3년 확정판결을 받고 억울한 옥살이까지 했다. 무죄의 결정적 근거는 2007년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과거사위)에서 김씨의 노트와 낙서장을 발견해 다시 실시한 필적감정 결과였다. 유서와 노트의 필적이 일치한 것으로 나타나 과거사위는 재심권고 결정을 내렸고, 이날 무죄 판결로 이어진 것이다.
이번 판결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교훈은 엄중하다. 당시 검찰이 김씨의 노트와 낙서장을 찾아냈더라면, 법원이 강씨의 주장에 귀 기울였다면, 국과수 감정인이 위증하지 않았다면 이런 억울한 일은 없었을 것이다. 검찰, 법원, 국과수가 진실규명 노력보다는 정권 눈치 보기에 바빴고 진실에는 침묵했던 결과다. 검찰과 법원 등이 진실을 외면하는 동안 강씨는 20년 넘게 고통을 겪어 왔다. 현재는 간암 수술까지 받고 힘겨운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저는 여전히 1991년도에 살고 있어요”라는 그의 말에 뭉클할 따름이다. 누명이 또 하나의 ‘암덩어리’라고 했다.
이런 점에서 사법부가 끝까지 한마디 유감 표명조차 하지 않은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서울고법에서 재심을 진행한 재판부도 유감을 표시하지 않았고, 이날 대법원도 별다른 의견 표명을 하지 않았다. 역사가 왜곡되고 국민 한 사람의 삶이 철저히 망가졌는데 함구로 일관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제라도 검찰과 법원, 국과수는 과거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해야 한다. 현재 승승장구하고 있는 당시 수사 관계자들에게도 위증 등의 공소시효가 끝나 형사적 책임을 추궁할 수 없다 해도 최소한의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공안 조작극의 실체도 낱낱이 밝혀내 ‘제2, 제3의 강기훈’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게 역사 앞에 죄를 짓지 않는 길이다.
[사설] 유서대필로 몰아간 검찰·국과수·법원 사죄하라
입력 2015-05-15 00: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