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성기철] 졸면 죽는다

입력 2015-05-15 00:10 수정 2015-05-15 10:32

오랜만에 고속도로에 나갔더니 졸음운전 경고 현수막이 눈에 확 들어왔다. ‘졸음운전이 음주운전보다 더 위험합니다’ ‘겨우 졸음운전에 목숨을 거시겠습니까’ ‘졸음운전, 목숨 건 도박입니다’ ‘졸음운전 자살운전 살인운전’…. 아니나 다를까 한국도로공사에서 졸음운전 방지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전개 중이란다. 고속도로와 주변 시설물에 현수막 1988개를 설치했으며, 560개 도로전광표지(VMS)에 경고 문구가 쉴 새 없이 뜨도록 했다. 졸음운전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느낌이다.

최근 3년간 고속도로 교통사고 사망자의 30%(255명)가 졸음운전에서 비롯됐다. 주시태만(35%)과 더불어 사망사고의 주범인 셈이다. 시속 100㎞로 운전할 때 단 1초만 졸아도 무의식 상태에서 27.7m를 돌진하는 꼴이니 운전 중 졸음은 자살행위임이 분명하다. 도로공사가 작심하고 캠페인을 벌이면서 졸음쉼터를 올해 말까지 184곳으로 확대 설치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현수막 가운데 ‘졸음운전의 종착지는 이 세상이 아닙니다’란 문구는 너무 자극적이란 생각이다. 군복무 때 지휘관한테 들었던 ‘졸면 죽는다’가 연상된다. 도로공사가 캠페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런 표현을 썼겠지만 군인이 아닌 민간인에겐 섬뜩하게 들린다. 심신이 미약한 노인과 어린이들에게 미칠 악영향도 고려해야 하지 않을까.

‘졸면 죽는다’가 북한에서 간부 숙청에 적용됐다. 김정은이 연설하는 동안 졸았다는 등의 이유로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이 공개 처형됐다니 황당하다. 공포정치를 자행하는 1인 독재국가가 아니고선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런 정권이 언제까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가 북의 급변사태에 철저히 대비해야 하는 이유다.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 정치사상가 니콜로 마키아벨리는 이렇게 경고했었다. “극도의 공포정치는 반드시 증오를 낳고 증오는 반체제 움직임으로 이어진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