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安倍晋三)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는 생각이 여럿 있다. 일본 국민의 극우 정서를 자극해 집권한 자민당 정치인, 과거사 왜곡의 대명사, 제2차 세계대전 전범 출신 외할아버지를 둔 일본 총리…. 한국인 입장에서 바라보면 아베 총리는 늘 이런 부정적 이미지로 비친다.
그런데 국제 외교무대에 비친 아베 총리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같은 다자외교 무대에 나가면 서방 정상들과 친구처럼 얘기하고, 세련된 매너와 화법을 구사하는 일본 정치인, 침체된 일본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은 일본 정상….
2014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도쿄를 방문했을 때 아베 총리는 정상회담 뒤 오바마 대통령을 도쿄의 한 회초밥집으로 데려갔다. 일본 서민들이 찾을 법한 조그만 식당에서 바로 옆에 앉은 미국 정상에게 이 일본 정치인은 “버락…”이라고 이름을 불렀다. 남녀노소 서로 나이와 상관없이 친구처럼 인사하는 문화에 익숙한 오바마 대통령은 의외라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활짝 웃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어제 대접받은 스시(회초밥)는 지금까지 사는 동안 가장 맛있는 음식이었다”고 했다.
올해 아베 총리는 얼마 전 워싱턴을 방문해 오바마 대통령과 링컨 기념관을 함께 찾았고, 다음날부터 세계 외교가의 화두는 ‘미·일 신(新)밀월시대’가 됐다.
2013년 오바마 대통령은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부부를 백악관이 아닌 캘리포니아의 휴양지 랜초 미라지로 초청했다. 넥타이를 풀고 셔츠 차림으로 만난 두 정상은 친구처럼 산책을 했다. 모든 분야에서 ‘G2’(세계 양강) 대결을 벌이고 있음에도 두 사람은 누구보다도 가까워 보이는 ‘스킨십 외교’를 보여줬다. 그리고 셔츠차림 사진 단 한 장으로 세계인에게 “미·중이 냉전시절처럼 싸우진 않겠네”라는 안심을 불러일으켰다.
이밖에도 세계 정상들의 스킨십 외교 사례는 너무도 많다. 구소련(러시아) 공산당 서기장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80년대 초반 노동자복을 벗고 양복 차림으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미국 대통령을 만나 어깨를 두드리는 장면으로 동서 화해의 시대, ‘페레스트로이카(개혁)’, 나아가 냉전의 붕괴를 열어젖혔다. 1970년대 미·중 수교를 연 ‘핑퐁 외교’도 마찬가지다.
박근혜 대통령도 이런 스킨십 외교를 선보인 적이 있다. 집권 첫해였던 2013년 6월 중국 베이징을 찾았던 때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시 주석 부부로부터 특별오찬 대접을 받았다. 활짝 웃으며 중국의 퍼스트레이디 펑리위안(彭麗媛) 손을 잡은 모습은 한국의 중국 밀착 외교기조를 그대로 대변했다.
하지만 외교무대에서 드러나는 대부분의 박 대통령 이미지는 좀 딱딱하다는 게 외교가의 평가다. 다른 나라 정상들이 복도에서 만나 농담 섞인 수인사를 할 때도 박 대통령은 잘 끼지 않는 편이고, 공식석상에서도 기조연설 등 공식적인 발언 외에는 다른 언급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2년 전 미국 방문에서의 모습도 오바마 대통령과 친구가 된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제 곧 박 대통령은 다시 워싱턴을 찾는다. 이미 아베 총리가 다녀가 ‘미·일 신밀월’이 열린 외교무대인 만큼 이번엔 우리가 보여줘야 할 게 참 많다. 김정은식 공포정치에다 군사도발 위협을 가중시키는 북한의 수상한 움직임, 미·중 간 미묘한 긴장, 일본의 미국 밀착…. 한반도 주변정세는 이처럼 격동하는 지금, 박 대통령이 어떤 스킨십 외교를 선보일지 기대가 되는 방미(訪美)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
[세상만사-신창호] 대통령 방미 이번엔 다를까
입력 2015-05-15 0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