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말괄량이 삐삐’ 작가가 기록한 2차대전의 고통, 책으로 나왔다… 종전일엔 “히틀러는 죽었다”

입력 2015-05-15 02:11

“끔찍한 무기력감이 모든 것을 짓누르고 있다. 라디오는 온종일 뉴스를 쏟아내고, 남자들은 징집됐다. 신이시여, 광기에 사로잡힌 불쌍한 우리를 구원하소서!”

스톡홀름에서 두 아이를 키우던 서른두 살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사진)은 전쟁의 악몽을 사진 찍듯 기록했다. 소설 ‘말괄량이 삐삐’가 그녀에게 세계적인 인기를 가져다주기 여섯 해 전, 1939년 9월의 일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린드그렌이 이날부터 1945년까지 쓴 17권 분량의 일기가 책으로 나왔다고 13일(현지시간) 전했다.

전쟁의 첫날 “어제 오후에 아이들은 뛰어놀고, 나는 공원에 앉아 전쟁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했는데 오늘 독일이 폴란드를 폭격했다”고 쓴 린드그렌은 노르웨이 유대인 1000명이 폴란드로 추방됐다는 소식이 들려온 날에는 “악마 같다”고 분노했다.

6년 후 1945년 5월 7일 종전 소식을 들은 린드그렌은 스톡홀름 거리가 승리의 기운으로 가득찼다고 묘사하며 “봄이다. 이 축복된 날에 태양이 빛난다. 전쟁은 끝났고 히틀러는 죽었다”고 기뻐했다.

린드그렌은 일기에 전쟁 이야기뿐만 아니라 말괄량이 삐삐를 구상하는 과정과 결혼생활의 위기로 인한 괴로움도 적었다. 전쟁이 끝나기 전해인 1944년 그녀는 “피가 넘쳐난다. 사람들은 불구가 됐고, 슬픔과 절망이 도처에 있다”면서 “하지만 나는 오직 나 스스로의 문제에 몰두해 있다”고 털어놨다.

린드그렌은 2002년 94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100편 이상의 작품을 썼다. 작가의 딸 카린 니만은 “그동안 방대한 분량 때문에 출간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엄마의 일기를 편집 없이 그대로 출간키로 했다”면서 “마침 종전 70주년을 맞춘 적절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