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고도 국민연금 가입자의 수급액을 늘리는 방법이 있다. ‘연금 크레디트 제도’가 대표적이다. 소득대체율 상향조정이 가입자 모두를 위해 ‘파이’를 키우는 방법이라면, 크레디트는 개인별로 ‘소득의 구멍’을 메워주는 보완책이다. 연금 가입자가 부득이하게 돈을 벌 수 없거나 소득이 크게 줄어들 때 국가가 연금보험료를 대신 내준다. 보험료 걷는 기관에 보험료만큼 돈을 지급해 연금 가입자의 가입기간을 늘려주는 식이다. 주로 출산·양육, 실업, 학업, 군복무 등의 의무봉사와 장애·상해에 대한 보상으로 적용된다.
크레디트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면 실질 소득대체율이 높아진다. 연금제도는 가입기간(보험료를 낸 기간)이 길수록 더 많이 받는 구조여서 그렇다. 전문가들은 “소득대체율과 별개로 연금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차원에서 더 강화해야 하는 제도”라고 말한다.
◇한국, 길어야 5년8개월 보상=우리도 출산·군복무 크레디트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7월부터 실업 크레디트가 새로 시행되면 크레디트 제도는 3가지로 늘어난다. 하지만 아직 가짓수도 적고, 보험료 지원 기간도 짧다.
출산 크레디트는 국민연금 가입자가 아이를 낳거나 입양했을 때 받을 수 있다. 2008년 1월 이후 태어나거나 입양한 자녀가 2명 이상이면 자녀수에 따라 12∼50개월까지 연금보험료 지원을 받는다. 자녀가 2명이면 12개월, 3명은 30개월, 4명은 48개월, 5명 이상은 50개월 동안 크레디트가 적용된다. 2007년 12월 31일 이전에 태어난 자녀는 1명이 12개월, 2명은 30개월, 3명은 38개월, 4명 이상은 50개월이다. 보험료는 국고와 기금에서 절반씩 부담한다. 크레디트 적용은 부부 중 한 명이 받거나 두 사람이 나눠 받을 수도 있다.
출산 크레디트는 ‘저출산 정책’이기도 하다. 아이를 낳는 게 경제활동에서 손해 보는 일이 되지 않도록 보완해주는 장치다. 하지만 현행 제도는 출산율 제고나 출산에 따른 소득의 틈을 메우기에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효성을 가지려면 ‘출산’이 아닌 ‘양육’으로 확대하고, 첫째 자녀부터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이정우 인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난해 우리나라 출산율이 1.21명밖에 안 될 만큼 초저출산율이 계속되는 점을 감안하면 둘째 자녀 출산부터 크레디트를 적용하는 것은 너무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전액 국고로 지원하는 군복무 크레디트는 6개월밖에 안 된다. 실업 크레디트는 정부가 보험료의 75%를 지원하는 방식으로 시행될 예정이다. 최대 지원액은 월 5만원. 실업 기간에 여러 번 크레디트를 받을 수 있으나 총 1년까지만 인정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가입자가 3가지 크레디트를 모두 적용받을 자격(군필자, 자녀 5명 이상, 2번 이상 1년 동안 실업급여 수급)이 있더라도 가입기간으로 인정되는 것은 고작 5년8개월이다.
◇유럽, ‘소득 위기’마다 촘촘히 지원=유럽의 연금 선진국은 대부분 ‘양육 크레디트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아이 키우는 기간을 소득이 불안정할 수밖에 없는 ‘위기’ 상황으로 인정하고, 노후 걱정 없이 양육에 힘쓸 수 있도록 넉넉하게 크레디트를 적용한다.
명목 소득대체율이 42%로 우리와 비슷한 독일은 양육 크레디트 제도가 상당히 발달했다. 자녀 1명당 3년씩 크레디트가 인정된다. 저소득층 여성은 최대 7년까지 적용해준다. 별도로 출산휴가 전후 기간에 대해서도 크레디트를 제공한다. 질병·상해·실업·사회봉사 크레디트도 있다. 크레디트 덕분에 독일의 실질 소득대체율은 명목 소득대체율보다 높은 47%나 된다.
‘돌봄 노동’(간병 부양 등)에 크레디트를 제공하는 나라도 있다.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은 돌봄 노동 기간에 전액 보험료를 지원한다. 돌봄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크레디트 제도로 실천하는 셈이다.
국가를 위해 봉사한 기간도 크레디트를 인정해준다. 스웨덴은 2010년 징병제가 폐지되기 전까지 군복무 기간 전체에 대해 보험료를 지원했다. 공적연금 제도가 2000년대 이후에야 활성화된 영국은 배심원으로 활동한 기간, 구속 기소됐으나 무죄 판결을 받은 국민의 잘못된 투옥 기간에까지 크레디트를 지원해준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연금 갈등 해법을 찾자] 소득 급감 때 보험료 내주는 크레디트制 확대해야
입력 2015-05-15 02: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