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예수를 따르려면

입력 2015-05-15 00:09

본문에는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하는 세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자세가 각자 달랐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각오를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주님을 기쁘게 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첫 번째 사람은 자발적으로 예수님에게 접근해 예수님이 어디로 가든지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그분을 따르는 삶은 생각만큼 폼 나는 삶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어 예수님께서는 두 번째 사람에게 ‘직접’ 자신을 따르라고 요청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먼저 자신의 아버지를 장사하게 해 달라고 말합니다. 자식 된 도리로 상주의 책임을 다하겠다는 겁니다. 이에 예수님의 반응은 의외로 냉담했습니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 9:60)

세 번째 사람도 예수님께 두 번째 사람과 비슷한 제안을 했습니다. 그는 주님께 헌신하겠다는 강한 소명으로 충성을 약속했지만 미처 작별도 못하고 나온 식구들에게 인사하겠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의 반응은 냉소적이었습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 9:62)

예수님의 이 말씀은 1세기 농경문화를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결코 쟁기질을 할 수 없는 정보화 시대에 살고 있지만 농경사회로 돌아가 쟁기질을 한다고 가정해봅시다. 소가 앞으로 나갈 때 농부는 쟁기를 아래로 힘껏 눌러야 합니다. 또 쟁기가 쓰러지지 않도록 곧게 세우고 있어야 합니다. 소가 전진하는 동안 농부는 쟁기질을 힘주어 바르게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농작물을 심을 수가 없게 됩니다. 즉 고도의 집중을 해서 소를 몰아가며 쟁기질을 해야 하는데 이 상황에서 뒤를 돌아본다는 것은 농사를 짓겠다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은 겁니다. 소와 쟁기, 땅과 인력이 확보되었는데도 풍년을 이루겠다고 하는 처음 각오가 약해진다면 곡식과 열매를 얻을 수 없습니다. 쟁기의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현대 시대에 적용해봅시다. 아빠가 자동차 뒷자리에 앉아 있는 아들과 장난치면서 고속도로를 달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운전대에 손을 올려놓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데 합당하지 않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왼손은 운전대에 올려놓고 오른손은 시동을 켬과 동시에 목적지를 향해 출발하는 것이 운전입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자기 할 일이 있다고 주님 따르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예비하신 열매를 위해 성실하게 쟁기질을 한다면, 우리의 삶이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준비하는 옥토밭으로 가꿔지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고백에 걸맞은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그분의 부르심입니다.

추진규 김포 송마리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