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부희령] 엄마가 되는 일

입력 2015-05-15 00:20

길을 걷다가 유모차를 밀고 가거나 자기 몸에 비해 너무 커다란 아기들을 안거나 업고 가는 젊은 엄마들과 마주칠 때가 있다. 내 눈에는 그냥 어린 여자처럼 보이는 그들을 보면 복잡한 감정이 일어난다. 스스로에게조차 방치된 그들의 자아를 느낀다. 오래전 죄책감과 함께 어딘가에 매장해 버린 사소하기도 하고 절박하기도 했던 욕망들을 기억해낸다.

나는 스물다섯 살에 아기를 낳고 엄마가 됐다. 친정어머니도 시어머니도 나의 산후조리를 해줄 수 없었다. 사정이 그러했다. 당시에는 산후조리원 같은 곳이 없었으므로, 대충 혼자 아기를 돌보고, 혼자 밥을 차려먹었다.

퇴원하고 아무도 없는 방에 아기와 단둘이 남겨졌을 때가 지금도 또렷이 기억난다. 두렵고 막막했던 느낌. 아기라는 낯선 존재에게 느꼈던 이물감. 그런 나 자신에 대한 놀라움. 죄책감. 아기가 어느 정도 자라기까지, 외출할 때나 집에 있을 때나 짧은 시간이라도 혼자 있는 게 쉽지 않았다. 책은 엄두도 내지 못했고, 신문을 읽을 시간조차 없었다. 아기는 잠깐 사랑스러웠다. 대부분 시간은 이유를 알 수 없게 성가셨고, 계속 무엇인가를 요구했다. 밤이면 기저귀가 젖었다고 깨어나고, 배가 고프다고 깨어나고, 때로는 아무 이유 없이 깨어나서 울었다. 낮에도 곁에 사람이 없으면 울기 시작했다. 아기는 철저히 내 책임이었고 그래서 나는 좀 외로웠다. 영화 한 번 보러 가는 게 소원이었고, 가장 하고 싶은 일은 그 무렵 막 생기기 시작한 클럽이라는 곳에 춤추러 가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처음으로 나를 낳은 어머니를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시절 아기를 돌보면서 생각하곤 했다. 이런 일들을 감당하려면 무한한 인내심과 엄청난 체력과 뜨거운 희생정신이 필요한데, 도대체 이런 일들을 홀로, 아무런 부작용 없이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요즘은 어린이집도 있고, 한 동네 사는 젊은 엄마들끼리 공동으로 육아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들었다. 그렇다고 나아졌을까.

부희령(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