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 ‘주님의 마음을 본받는 자’ 455장(통 507)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디모데후서 2장 20절
말씀 : 금이 가고 깨진데다 생김새까지 못난 항아리가 하나가 있었습니다. 항아리의 주인은 물을 길어 오는데 늘 그 항아리를 이용하는 것이었습니다. 깨어진 항아리는 마치 온전한 항아리처럼 자기를 아껴 주는 주인에게 고마우면서도 한편은 미안한 마음을 감출 길 없었습니다. 이유는 돌아오는 길에 그 많은 물이 새어 버려 주인의 수고에 보답을 못하니 말입니다.
어느 날 깨진 항아리가 진지하게 물었습니다.
“차라리 저를 버리시고 새 항아리를 구하시지 그러세요. 저는 금이 가고 깨져 소용이 없는 데다 볼품마저 없잖아요. 더군다나 주인님을 늘 피곤하게만 만들뿐일걸요.”
그러자 주인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습니다.
“얘야, 우리가 걸어온 길을 보려므나.”
그제야 항아리는 생각 없이 주인님과 다니던 그 길을 보았습니다. 길가에는 예쁜 꽃들이 자신의 모습을 뽐내며 아름답게 자라 있었습니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길과 같았습니다.
“주인님, 어떻게 이 산골에 이런 아름답고 예쁜 꽃들이 피어 있을 수 있을까요?”
주인이 입가에 웃음을 가득 머금고 말했습니다. “메마른 산, 길가에서 너의 깨어진 틈으로 새어나온 물을 먹고 자란 꽃들이란다.”
오늘 본문에서 우리의 관심은 금 그릇이냐 은그릇이냐에 대한 관심보다 귀하게 쓰임 받는 그릇인가 아니면 천하게 취급받느냐에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금 그릇도 천하게 취급받을 수 있고 은그릇도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릇의 재질이나 크기에 대한 것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주인의 쓰시기에 합당한 것이냐 아니냐에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본문의 초점은 은, 금의 문제가 아닌 귀한 그릇이 그 포인트입니다.
과연 나는 귀한 그릇 되기를 힘쓰고 있습니까? 이 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을 스스로 자책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 분은 깨진 항아리를 통해 들꽃을 키울 수 있는 우주의 정원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관점이 아니라 주님의 관점을 가지고 나를 들여다보는 일이 필요합니다. “큰 집에는 금 그릇과 은 그릇뿐 아니라 나무 그릇과 질그릇도 있어 귀하게 쓰는 것도 있고 천하게 쓰는 것도 있나니.”(딤후 2:20)
탈무드에는 이런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당신이 주신 모습을 즐기기 원하신다.” 만약 이마의 주름조차 ‘세상 주름 잡으라고 주신 하나님의 훈장’으로 받아들인다던지 작은 눈조차 ‘굳이 선글라스가 필요하지 않은 세상의 창’이라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내가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순간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셈입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나의 창조자가 되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작품에는 실패작이 없다는 것을 믿으며 나 자신을 더 멋지게 가꾸어가는 가족들 되게 해 주세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송길원 목사
(하이패밀리 대표)
[가정예배 365-5월 17일] 내 모습 백배로 즐기기
입력 2015-05-16 00: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