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빠진 軍… 장교들, 레바논에 탄창 4만6600개 밀수출

입력 2015-05-14 02:22

국군기무사령부 전·현직 장교들이 군 전략물자인 M-16, AK-46 소총 탄창을 레바논에 밀수출하다 적발됐다. 레바논에 평화유지군으로 파병됐던 이가 주도했다. 이들이 판매한 탄창은 현지 무장단체에 흘러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1998년 육군 소위로 임관한 이모(41)씨는 2011년 1월 기무사 소령으로 전역했다. 전역을 앞두고 미래를 고민하다 군수품 무역업에 눈길이 갔다. 2007년 6월부터 2008년 2월까지 레바논에서 평화유지군으로 근무하며 쌓은 현지 인맥을 활용하면 돈이 될 것 같았다.

전역 3개월 전 동생(40)을 대표로 내세워 군수품 수출업체 P무역회사를 설립했다. 수출 품목은 소총의 탄창이었다. 레바논 파견근무 때 사귄 현지인에게 “앞으로 무역을 할 건데 현지 사람들 좀 소개해 달라”고 부탁해 거래처들을 받았다.

하지만 생각지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방위사업청에 허가를 요청했지만 “탄창의 레바논 수출은 허가할 수 없다”는 답변을 들었다. 탄창이나 총기류 등 전략물자를 수출하려면 당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 전략물자는 정부가 국가안보, 외교정책 등을 고려해 수출입과 공급·소비를 통제하는 품목이다. 국가 간 거래는 가능하지만 개인 간 거래는 엄격히 제한된다. 방사청은 특히 레바논이란 지역적 특성을 감안해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법적인 무역 루트가 막히자 이씨는 뒷거래를 계획했다. 수출품 운송업자 박모(49)씨의 조언을 받아 M-16, AK-46 탄창을 다른 수출품으로 위장해 세관의 눈을 속이기로 했다. 관세사까지 동원했다. 관세사 최모(53)씨는 수출신고서에 수출품목을 탄창이 아닌 ‘자동차 오일 필터’나 ‘수통’ ‘브레이크 패드’ 등으로 허위 기재하는 작업을 담당했다.

이씨는 군 후배인 현직 기무사 소령 양모(38)씨도 끌어들였다. 두 사람은 강원도 모 부대에서 중대장과 참모로 함께 근무했었다. 양 소령은 2011년 5월 이씨에게 투자금으로 3000만원을 건넨 데 이어 불법 수출할 탄창의 제안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국내에 들어온 현지 수입상을 안내하는 등 범행을 적극 도왔다.

탄창은 군수품 판매·제조업자 노모(50)씨에게서 조달받았다. 그는 전략물자의 국내 수요가 적어 계속 쌓이는 재고를 처리할 기회라고 여겼다. 탄창에 새겨지는 생산자 로고를 지워주는 등 적극적으로 협조했다.

이들은 2011년 7월 국내 군수품 제조업체로부터 사들인 탄창 200개를 모양이 비슷한 오일필터, 브레이크 패드 등으로 허위 기재한 수출신고증 등 관련 서류를 부산세관에 제출했다. 통관절차를 거쳐 탄창은 레바논으로 갔다. 현금만 주고받으며 거래 흔적을 철저히 감췄다. 부산항 및 부산세관을 통해 2012년 12월까지 3차례에 걸쳐 탄창 4만6600개를 밀수출하고 3억6000여만원을 챙겼다.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대외무역법 위반 혐의로 이씨와 노씨를 구속하고, 양 소령 등 5명을 불구속 입건했다고 13일 밝혔다. 양 소령은 지난 12일 군 검찰로 이첩됐다.

경찰은 레바논으로 나간 전략물자가 무장단체에 흘러들어갔을 수 있다고 본다. 경찰 관계자는 “레바논 현지에서 밀수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는 아직 파악하지 못했다”면서 “중동 지역 무장단체 등과 연결됐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관련 첩보 수집 및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