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히스토리] 싸구려 짝퉁에서 럭셔리로… PB의 진화

입력 2015-05-15 02:34
이마트 매장을 찾은 고객이 피코크 코너에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가정간편식 시장을 겨냥해 론칭된 브랜드 ‘피코크’는 한식, 중식, 일식은 물론 디저트까지 분야를 넓히고 있다. 이마트 제공


이마트의 올해 1분기 기존점 기준 매출은 지난해 동기 대비 1.1% 상승했다. 이마트 기존점 매출 증감률(전년 동기 대비)이 플러스로 돌아선 것은 2011년 4분기 이후 처음이다. 2012년 2분기 이후 대형마트 업계 전체 매출 증감률이 줄곧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상황에서 이마트가 이 같은 성과를 거둔 것은 자체 브랜드(PL·Private Label) 상품 매출이 15.4% 신장한 영향이 컸다.

유통업체에 따라 PL 상품 혹은 PB(Private Brand)·SB(Store Brand) 상품으로 부르는 자체 브랜드 상품은 가격 이점뿐 아니라 품질 경쟁력을 갖추면서 시장점유율을 차츰 확대하고 있다. 업계에선 국내 관련 시장이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 비해 많이 낮은 편이어서 향후 성장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자체 브랜드 상품 선택 아닌 필수

대형마트 업계 1위 이마트는 1997년 ‘이플러스(E-Plus) 우유’를 출시하며 대형마트 업계 최초로 자체 브랜드 상품을 내놨다. 이후 신선·가공식품 등 생활필수품을 중심으로 한 이플러스를 비롯해 이베이직, 자연주의, 마이클로 등의 브랜드를 통해 상품 구성을 넓혀갔다. 2007년 10월 5개 브랜드 3000여 상품을 새로 선보인 후 2008년에는 유·아동복 및 패션·잡화 등을 대거 출시하며 1만5000여개에 이르는 상품 라인을 구축했다.

2013년 말에는 최근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가정간편식(HMR) 시장을 겨냥해 별도 브랜드인 ‘피코크’도 론칭했다. 김밥, 샌드위치, 잡채 등에 한정됐던 HMR 시장에서 한식, 중식, 양식은 물론 간식과 디저트류까지 대상 품목을 넓히고 있다.

상품이 다양해지면서 제조사 브랜드(NB·National Brand)를 위협하는 사례도 속속 나타나고 있다. ‘이마트 원두커피’는 이마트에서 판매하는 120여개 원두커피 중 매출 1∼3위를 기록하면서 지난해 판매된 원두커피 매출의 3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고급 커피 산지의 생두를 직송하지만 유통구조를 줄여 가격은 50∼60% 더 낮게 판매한 것이 인기를 끄는 이유가 됐다.

이마트 홍삼정도 2013년 10월 출시 이후 지금까지 모두 25만개가 판매된 베스트셀러 상품이다. 중간 유통비용을 줄이면서 기존 NB 제품 대비 가격을 절반 정도로 낮춘 것이 주효했다.

홈플러스 역시 자체 브랜드 상품이 전체 성장률을 압도했다. 1분기 기존점 자체 브랜드 상품 매출은 21% 증가해 전체 매출 증가율(0.9%)을 크게 웃돌았다.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전체 매출에서 자체 브랜드가 차지하는 비중도 28.4%까지 치솟았다. 롯데마트도 2013∼2014년 25%이던 자체 브랜드 비중이 올해 1분기에는 26%로 상승했다.

대형마트와 함께 편의점도 자체 브랜드 상품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CU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자체 브랜드 상품이 차지했던 비중은 2013년 7.6%에서 올해 1분기에는 22.8%까지 급증했다. 세븐일레븐도 2011년 27.9%에서 올해 1분기에는 34.8%로 높아졌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해외시장도 노크하고 있다. 이마트는 지난해 7월부터 홍삼정을 시작으로 홍삼추출액, 홍삼진액, 간편홍삼정을 미국 등으로 수출하고 있다. 홈플러스도 지난달 자체 브랜드 상품 150여종을 중국에 수출하기로 계약했고, 세븐일레븐도 국내 편의점 업계 최초로 말레이시아에 과자 등을 수출했다. 홈쇼핑사인 CJ오쇼핑은 자체 브랜드 화장품인 르페르를 터키와 두바이에 수출하고 있다.

가격 이점 넘어 프리미엄 제품으로 진화

2013년 4월 일본 세븐&아이 홀딩스의 자체 브랜드 상품인 ‘세븐골드 금식빵’은 발매 후 7개월간 2500만개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엄선한 고급 재료를 사용한 제품으로 제조사 브랜드 제품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프리미엄 전략이 먹히면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했다는 평을 들었다.

이처럼 과거 가격 이점을 앞세웠던 자체 브랜드 상품은 최근 들어 질적인 우위를 내세우는 프리미엄 상품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마트는 2010년 상품 리뉴얼을 통해 프리미엄급 베스트(BEST)와 가격 이점을 내세운 세이브(SAVE), 중간 단계의 이마트(E-MART)로 브랜드를 리뉴얼했다. 지난해에는 최고급 참깨인 제주도산 참깨만을 사용해 만든 ‘이마트 참깨’를 출시하기도 했다.

롯데마트도 지난해 기존 ‘프라임 엘’에서 한 단계 상위의 ‘프라임 엘 골드’를 론칭했다. 기존 자체 브랜드 상품보다 배 이상 비싼 프리미엄 우유를 출시하는 등 해마다 20여개 품목을 출시하고 있다. 홈플러스는 ‘홈플러스 프리미엄’을 통해 고급 제품을 선보이고 있다.

유통업체들이 상품 종류를 늘리고 점차 고급화하는 것은 국내 소매시장에서 자체 브랜드 상품 비중이 아직 낮아 발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글로벌 정보 분석업체 닐슨에 따르면 2013년 기준 국내 자체 브랜드 상품 비중은 4%로 글로벌 평균(16.5%)에 크게 못 미친다. 스위스(45%) 스페인(41%) 영국(41%) 등 유럽 국가와 비교하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월마트, 까르푸, 테스코 등 글로벌 유통업체들도 자체 브랜드 상품 매출 비중이 40∼50%에 육박한다.

국내 업체들도 이러한 추세에 발맞춰 관련 상품 강화에 집중해 왔다. 이마트는 2006년 12월 자체 브랜드 개발과 품질 향상을 담당하는 ‘브랜드 관리팀’과 ‘품질 관리팀’을 신설했다. 2010년 12월에는 브랜드 관리팀을 ‘브랜드 전략팀’으로 격상했다.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는 지난달 1일 열린 창립 17주년 기념행사에서 2017년까지 자체 브랜드 상품 매출 비중을 40%대까지 끌어올리겠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업계에선 내수 침체와 유통 채널 다양화로 합리적 소비 경향이 강화되면서 국내 시장 역시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보고 있다. 대형마트 업계 관계자는 “업계 환경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과거처럼 유통만 해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힘들어졌다”며 “업계 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유통 채널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선 결국 ‘여기만 파는 상품’을 통해 차별화를 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현길 기자 h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