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마이브리지를 언급하자마자 그가 내 말을 잘랐다. ‘올해 마이브리지에 관해서 아주 중요한 책이 나왔다는 거 압니까?’… 그는 벌써 그 아주 중요한 책에 대해서 떠들기 시작했다. 장광설을 펼치는 남자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거만한 표정으로… 쌜리가 ‘그게 바로 이 친구 책이라고요?’를 세 번인가 네 번쯤 말한 뒤에야 그는 말귀를 알아들었고, 그 즉시 꼭 19세기 소설에 나오는 사람처럼 얼굴이 잿빛으로 변했다.”
미국의 여성작가 리베카 솔닛(55)이 2008년 쓴 이 얘기는 단순한 에피소드로 끝나지 않았다.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고 든다”, 여성들이 차마 입 밖으로 내지 못했던 그 말을 공개한 것이었다. 여성들은 그것이 자기만의 경험이나 감정이 아니라 여성 일반에게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패턴이었다는 걸 확인하고는 열광했다.
‘맨(man·남자)’과 ‘익스플레인(explain·설명하다)’을 합성한 신조어 ‘맨스플레인(mansplain)’은 여기서 탄생했다. 남성이 여성을 기본적으로 뭔가 모르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자신의 말을 일방적으로 쏟아 붓는 태도를 가리킨다. 2010년 뉴욕타임스 ‘올해의 단어’로 꼽혔으며, 2014년에는 ‘옥스퍼드 온라인 영어사전’에 실렸고, 오스트레일리아에서도 ‘2014년의 단어’로 꼽혔다. ‘맨스플레인’이 한국에도 상륙했다. 이 단어의 발단이 된 글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를 맨 앞에 내세운 솔닛의 에세이집이 나왔다. 솔닛은 ‘맨스플레인’이라는 태도가 뿌리 깊은 여성혐오와 비하, 그리고 여성에 대한 폭력과 맞닿아 있음을 예리하게 드러낸다.
“이런 현상은 길거리 성희롱과 마찬가지로 젊은 여자들에게 이 세상은 당신들의 것이 아님을 넌지시 암시함으로써 여자들을 침묵으로 몰아넣는다. 이런 현상 때문에 여자들은 자기불신과 자기절제를 익히게 되는 데 비해 남자들은 근거 없는 과잉 확신을 키운다.”
‘가장 긴 전쟁’이라는 두 번째 글에서는 정색을 하고 분노에 찬 목소리로 여성 폭력 문제를 고발한다. 솔닛은 미국과 세계 각지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강간, 폭행, 살인 등을 거론하면서 그런 범죄가 젠더(gender·성) 문제라고, 남성 때문이라고, 남성우월주의와 가부장제 때문이라고 얘기하지 않는다고 비판한다. “폭력의 유행병은 늘 젠더가 아닌 다른 것으로 설명된다”는 것이다. 예컨대 경기가 나쁘기 때문이라고, 빈부격차 때문이라고, 정신적 문제나 중독성 물질 때문이라고….
책은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에세이 9편을 수록하고 있다. 솔닛의 글은 페미니즘이 이미 완료됐고 심지어 과잉이라는 주장이 넘쳐나는 이 시대에 여성은 아직 평등한 세상에 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나는 내가 말을 건넨 모든 사람과 가능한 한 깊이 대화를 나누고 싶다. 나는 열린 들판에서 잠들고 싶고, 서부를 여행하고 싶고, 밤거리를 자유롭게 거닐고 싶다”는 미국의 여성시인 실비아 플라스의 바람은 여전히 달성되지 않았다. 페미니즘이 여성만의 언어가 아니며 세상 전체를 바꾸려는 노력이라는 주장에도 공감하게 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책과 길] 女 가르치려드는 男… 그는 대체 왜 이럴까
입력 2015-05-15 02: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