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건물이 불과 40년 만에 이토록 드라마틱한 흥망성쇠의 스토리를 가질 수 있을까.
‘지구상에서 가장 높은 슬럼가’라는 오명이 붙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54층 건물인 ‘폰테 시티’(사진)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프라카의 뉴욕’으로 불리는 남아공 경제수도 요하네스버그에 있는 173m 높이의 폰테 시티가 요즘 그런 오명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1975년 요하네스버그의 국제 지구인 힐브로에 건립된 폰테 시티는 부의 상징이었다. 소수의 백인 부유층, 그 가운데서도 ‘일류 중의 일류’만 살 수 있었던 고급 아파트였다. 원통형 형태의 폰테 시티는 가운데는 텅 비어 있는 형태로 어느 방향에서도 탁 트인 전경을 갖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가 철폐되고 민주화가 이뤄지면서 사정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힐브로 지구에 아프리카 전역에서 불법 이민자들이 몰려들었고, 그러면서 범죄도 증가했다. 동네가 위험해지자 백인 입주민들이 하나둘씩 빠져나갔고, 결국 최고급 아파트가 대부분 비게 됐다.
그러자 이 공간을 갱들이나 범죄자들이 차지했다. 이후 폰테 시티라는 말은 매춘과 마약을 할 수 있는 곳이자 ‘범죄의 온상’이라는 대명사처럼 취급됐다. 비어 있던 원통 안쪽에는 5층 높이까지 쓰레기가 쌓이기도 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건물주가 바뀌고, 10년 이상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최근에는 ‘멀쩡한 사람’도 살 수 있을 만큼 변해가고 있다. 가족 단위의 입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커뮤니티 활동도 일부 살아나고 있다. 한 입주민은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아주 슬픈 스토리를 간직한 건물”이라며 “그런 슬픔 속에서도 살아갈 만은 하다”고 말했다.
손병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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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화제] 높이 173m ‘마천루 슬럼’의 변신
입력 2015-05-14 0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