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최우선 국정 어젠다(의제) 중 하나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타결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오바마 대통령이 TPP 협상 타결의 전제조건으로 여겨지는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부여의 정당성을 ‘필사적’으로 설명했으나 ‘친정’인 민주당의 공감을 얻는 데 실패했다는 게 명백해졌다.
미 상원은 12일(현지시간) TPP 협상의 신속한 타결을 위해 행정부에 TPA를 부여하는 법안에 대한 절차투표를 한 결과 찬성 52표, 반대 45표로 부결됐다고 밝혔다. 하원과 달리 상원(100석)에서는 법안을 심의·표결하기에 앞서 토론 종결을 위한 절차투표를 해 60명 이상이 찬성해야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무력화할 수 있다. 찬성표는 대부분 공화당(54석)에서 나왔고 민주당에서는 톰 카퍼(델라웨어) 상원의원 1명을 빼놓고 전부 반대표를 던졌다. ‘신속협상권’으로도 불리는 TPA란 행정부가 타결한 무역협정에 대해 미 의회가 내용을 수정할 수 없고 오직 찬반 표결만 할 수 있도록 규정한 조치다.
조시 어니스트 백악관 대변인은 이날 부결에 대해 “절차적 대혼란”이라는 말을 10번이나 되풀이했다. 민주당 의원들의 ‘반란’이 TPA 자체에 대한 반대가 아니라 TPA 법안 통과와 관련된 절차상 혼선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이런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실제 최소 10명 이상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이 TPA 법안을 지지했으나 절차투표에서는 당론에 따라 반대표를 던진 것으로 전해졌다. 대신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상원에 계류 중인 3개의 무역 관련법안과 TPA 법안 등 4개를 패키지로 묶어 한꺼번에 처리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자국의 무역 이익을 위해 환율을 조작하는 국가에 대해 수입관세를 부과하는 법안의 처리를 강하게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수정 없이’ TPA 법안을 통과시키려는 오바마 대통령의 뜻과는 큰 거리가 있다. 일본 등 상당수 협상국들이 환율조작 관련법이 통과되면 TPP에 참여하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어 공화당과 오바마 대통령으로서는 ‘환율 조작’ 법안의 처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동안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노동단체와 환경단체 등은 TPP를 강하게 반대해 왔다. 민주당 진보파의 대표주자 격인 엘리자베스 워런(매사추세츠) 의원을 위시한 민주당 상원의원 상당수는 환경 및 노동자보호 조항 미흡 등을 반대 이유로 내세우고 있다.
결국 겉으로는 ‘절차상 혼선’으로 보이지만 이번 상원 절차투표 부결은 TPP에 대한 민주당 내 거센 반대 여론을 오바마 대통령이 설득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반대하는 의원들이 실상을 몰라서 그렇다고 공박하는 등 ‘잘난체하는’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 방식이 역효과를 불렀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그동안 하원이 문제지 상원은 근소하게나마 TPA 부여 법안이 통과될 것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협상국들이 TPP 타결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TPA 법안 처리가 불발됨에 따라 오바마 대통령은 적잖은 타격을 입게 됐다. 올해 여름 전까지 TPP 협상을 마치고 연말까지 의회 비준을 받겠다는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상원이 다시 TPA 법안 처리를 시도하더라도 다음 달이나 돼야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더욱이 향후 TPA 부여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이후 약 2주간의 추가 법안심의 기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TPP 협상 타결시점은 더욱 늦춰질 것으로 예상된다.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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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TPP, 아군 민주당 반대에 급제동
입력 2015-05-14 0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