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징용 애환 서린 우토로 마을, 윤동주 시인의 도시샤대학… ‘동북아 평화’ 기독인 사명 깨달았죠

입력 2015-05-14 00:17
지난달 9일 일본 교토 도시샤대학 교정의 윤동주 시인 시비 앞에서 포즈를 취한 김은택씨, 서진원군, 조동현씨, 박영춘씨(왼쪽부터). 동북아 평화를 기원하며 일본 여행을 떠났던 이들은 “여행을 통해 일본 선교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은택씨 제공

직장인 김은택(38)씨는 지난해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일본 편’ 시리즈를 읽었다. 일본 열도로 건너가 우리 문화를 전파한 ‘삼국시대 디아스포라’ 도래인(渡來人)의 발자취를 되짚은 저서였다. 그는 책에 나오는 장소들을 방문하고 싶어 지난해 11월 일본 교토와 아스카 지역을 4박5일간 탐방했다. 서울 나들목교회에 다니며 알고 지낸 서진원(17)군도 동행했다.

여행을 마친 김씨와 서군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조선족이나 새터민도 과거의 도래인과 비슷한 신분 아닌가. 이들과 선조들의 정신이 서린 일본을 다시 방문하면 어떨까.’

마침 2015년은 광복 70주년이었다. 김씨는 교회를 통해 교분을 쌓은 중국 옌지(延吉) 출신의 직장인 박영춘(37)씨, 새터민 대학생 조동현(31)씨에게 여행을 제안했다. 이들은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그리고 이들 4명은 지난달 6일 일본으로 떠났다. 5박6일간 교토 아스카 나라 등지의 유적지를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광복 70주년을 맞아 크리스천 청년들이 벌인 일종의 ‘역사기행’이었던 셈이다.

최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이들 4명을 만났다. 팀장인 김씨는 여행을 기획한 이유부터 설명했다. 시간은 그가 안중근 의사가 숨진 중국 뤼순(旅順)을 방문한 2009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뤼순에 가서 안 의사의 삶을 되짚어보다가 큰 충격을 받았어요. 고인이 돌아가셨을 때 나이가 당시 저와 비슷한 30대 초반이더라고요. 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졌어요. 이제부터라도 평화의 길을 고민하며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죠. 이번 여행도 이러한 고민의 결과이고요.”

일본 여행은 답사에 가까웠다. 관광지는 거의 가지 않았다. 도래인 유적지, 일제강점기 강제 징용된 한인들의 동네인 우토로 마을, 시인 윤동주가 수학한 도시샤대학 등지를 탐방했다. 팀원 중 직장인들은 여행을 위해 휴가를 냈다. 서군은 ‘홈스쿨링’을 하는 학생이어서 무리 없이 일정을 소화할 수 있었다. 대학교 4학년인 조씨는 여행 기간 중 수업이 없었다.

“팀원 중에는 중국에서 나고 자란 사람도 있고 북한 출신도 있습니다. 하지만 모두 한민족이라는 공통점이 있죠. 일본을 여행한 5박6일간 한·중·일 3국이 반목과 충돌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서로를 보듬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대화를 많이 나누었어요.”(박씨)

“평화라는 건 전쟁이 없는 상태를 가리키는 게 아니에요. 이웃한 나라들이 한곳을 바라보면서 함께 걸어가는 것이 평화입니다. 지금까지 동북아는 그런 평화를 만든 적이 없었어요.”(서군)

여행 경비 300여만원 중 60여만원은 네티즌을 상대로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모금)을 진행해 마련했다. 광복 70주년이 되는 오는 8월 15일에는 자신들의 여행기를 담은 책도 발간할 계획이다. 이들은 “이미 집필을 시작했지만 제목은 정해지지 않았다. 현재 출판사를 물색하고 있다”고 전했다.

짧은 일정이었지만 일본 여행은 크리스천으로서의 사명을 되새기는 시간이기도 했다. 이들 4명은 “동북아 평화를 위해서는 기독교인이 앞장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아무리 깊은 역사적인 상처가 있는 관계여도 이웃나라 국민을 보듬을 수 있는 사람은 크리스천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크리스천은 대가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으니 사랑의 의미를 잘 알고 있지요. 기독교인들이 동북아 문제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면 평화도 금방 찾아올 겁니다.”(박씨)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