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김영석] 원포인트 한·일 정상회담 갖자

입력 2015-05-14 00:39

다음달 22일은 한·일 국교 정상화 50주년이 되는 날이다. 50년 세월은 양국 관계의 모든 파이를 키워놓았다. 지난해 교역량은 860억 달러. 1965년 2억2000만 달러의 390배다. 연간 1만명 수준이었던 상호 방문자는 500만명을 넘어섰다. 거꾸로 가는 분야도 있다.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빅터 차 한국석좌는 “현재 한·일 관계는 역대 최악”이라고 했다. 3월 독도 도발 교과서, 4월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4월 말 아베 총리의 미 의회 합동연설까지. 일본의 도발 행보는 현재진행형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3년째 ‘일본의 변화가 먼저’라는 기존 스탠스를 고수하고 있다. 지난 4일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외교 문제는 별도 추진”이라는 투트랙 전략을 재언급하긴 했지만 말이다. 이제는 ‘도돌이표 한·일 관계’를 끝내야 할 시점이라는 게 중론이다. 대결 구도를 관리 모드로 전환할 시기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판을 바꿔야 한다는 의미다.

일본군위안부 문제만 다룰 회담 필요

최대 현안인 군위안부 문제의 해법을 먼저 모색해보자. 이 문제는 타결 직전까지 간 적이 있기에 의외로 쉽게 풀 수도 있다.

2012년 3월 사사에 겐이치로(佐佐江賢一郞) 당시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현 주미 일본대사)이 새로운 3대 제안을 들고 한국을 찾았다. △일본 총리의 공식 사죄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인도주의 명목의 배상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자들을 방문해 총리의 사죄문을 읽고 배상금을 전달한다는 내용이다. 우리 정부는 국가 책임이 빠진 인도주의적인 배상을 수락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는 이후 상황이 서술돼 있다. 같은 해 10월 이동관 당시 특임대사가 사이토 쓰요시(齋藤勁) 관방부장관과 접촉했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당시 일본 총리가 ‘일본 정부의 책임을 통감한다’는 표현이 들어간 사죄 편지를 쓴 뒤 주한 일본대사가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찾아가 낭독한다는 데 합의했다. 1인당 300만엔의 사죄금을 지급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아세안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일 정상회담을 열어 최종 합의하기로 했다. 그러나 아세안 정상회의 직전 일본 중의원 해산 결정이 내려지면서 합의는 ‘말짱 도루묵’이 됐다.

아베 총리는 과거 노다 총리보다 더 민족주의적이고 훨씬 더 과거사 문제 해결에 인색하다. 미 의회 연설에서 아베 총리는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방청석에서 지켜보는데도 위안부 문제도, 과거사 사죄도 언급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는 오는 8월 과거사 사과가 빠진 전후 70주년 담화를 발표할 공산이 크다. 박근혜정부의 남은 임기 동안 획기적인 관계 개선은 기대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외교 불통을 해소할 수 있는 고도의 전략과 정치 지도자의 결단이다. 한국이 주도적으로 해법을 찾자는 말이다. 군위안부 문제를 의제로 한 원포인트 한·일 정상회담도 방법 중 하나라고 본다. 원포인트 정상회담에서 서로의 속마음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은 진정성 있는 조치를, 한국은 포용성 있는 해법을 마련한다면 금상첨화다. 내년쯤 정상회담을 가져도 늦지 않다. 국내에서 반발 목소리가 클 수 있다. 정치 지도자의 여론 설득 노력이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대목이다.

한국이 어른스러운 입장에서 대화해야

38년간 외교 현장을 누벼온 공로명 전 외무부 장관은 지난 1월 ‘나의 외교노트’라는 저서를 내면서 이렇게 조언했다. “정치 지도력의 문제다. 국민의 표를 의식해선 안 된다. 막히면 뚫어야 하는데 때에 따라선 큰 틀에서 길을 뚫어야 한다. 양국 정상이 만나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한국이 좀더 어른스러운 입장으로 대화를 주도해야 한다.”

김영석 정치부장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