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강점기 이후 상인들 사이에 관행적으로 거래돼온 ‘상가권리금’이 마침내 법제화됐다. 지난해 2월 박근혜 대통령이 권리금 보호를 약속한 지 1년3개월 만이다. 건물주 앞에서 ‘을(乙)’이 될 수밖에 없는 임차상인의 권리가 법의 보호를 받게 됐다.
국회는 12일 본회의에서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핵심은 33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임차상인 간 권리금 거래에 건물주가 부당하게 개입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제 임차상인이 다른 상인에게 점포를 넘기려 할 때 건물주는 신규 임차상인과의 임대차 계약을 ‘정당한 이유’ 없이 거절할 수 없다. 건물주가 임차상인의 권리금 회수를 방해할 경우 임차상인이 건물주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점포 규모에 상관없이 모든 임차상인에게 5년간은 그 점포에서 계속 장사할 수 있도록 계약갱신권이 보장된다.
건물주에게 금지되는 ‘방해 행위’는 △임차인이 주선한 신규 임차인에게 직접 권리금을 요구하거나 수수하는 행위 △신규 임차인이 기존 임차인에게 권리금을 지급하지 못하게 하는 행위 △신규 임차인에게 기존보다 크게 높은 월세와 보증금을 요구하는 행위 등이다.
이 법은 국무회의를 거쳐 공포되는 즉시 시행된다. 이르면 이달 중, 늦어도 다음 달부터 수백만명의 임차상인이 혜택을 보게 될 전망이다. 상가임대차보호법 개정에 따라 달라지는 사항을 사례별로 정리했다.
◇권리금 회수 기회 보장=A씨는 2012년 명동에 음식점을 열었다. 권리금 등 3억원을 투자했다. 3년 뒤 건물주가 “내 아들이 여기서 장사하려 한다”며 나가라고 했다. 점포를 다른 임차상인에게 넘기지 못하면 A씨는 권리금을 받을 곳이 없다. A씨가 버티자 건물주는 월세를 배로 올렸다. A씨는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결국 장사를 접고 권리금도 날렸다.
B씨는 1995년 종로에 중국집을 차렸다. 건물주는 2012년 점포를 비워 달라고 했다. B씨는 이전 상인에게 지불했던 권리금 1억5000만원을 받아 나가려고 새 임차상인을 물색했다. 그런데 건물주가 새 상인에게 지금보다 배가 넘는 월세 650만원을 요구했다. 계약이 성사되지 않아 B씨는 권리금을 포기하고 가게를 접었다.
이제 A씨나 B씨와 같은 상황의 임차상인은 권리금을 보호받게 된다. 건물주가 A씨에게 “이 가게 내 아들 줄 테니 나가라”고 한 것은 권리금 회수 방해 행위에 해당한다. A씨는 건물주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A씨가 점포를 빼더라도 건물주는 신규 임차인에게 직접 권리금을 받지 못한다. B씨 물색한 신규 임차인에게처럼 턱없이 높은 월세를 요구해 권리금 회수 기회를 사실상 차단하는 행위도 금지된다.
하지만 건물주가 1년6개월 이상 비영리 목적으로 점포를 쓰거나 신규 임차인이 보증금이나 월세를 낼 여력이 없는 경우 등에는 건물주가 신규 계약을 거절할 수 있다.
◇최소 5년은 영업 가능=C씨는 2011년 홍대 앞에 곱창집을 열었다. 전 임차인에게 권리금 2억원을 줬다. 2012년 11월 갑자기 건물이 팔렸다. 새 건물주는 “내가 점포를 쓰겠다”며 C씨에게 나가라고 했다. 이 곱창집은 환산보증금 4억원이 넘어 상가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다. C씨는 권리금을 날리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제 C씨처럼 억울한 경우는 사라진다. 개정 법률은 점포 규모에 상관없이 누구나 최소한 5년간은 쫓겨나지 않고 장사할 수 있도록 했다. 건물주가 바뀌어도 5년간은 영업권이 유지된다. 다만 재건축·재개발 시 퇴거 보상금 지급, 계약갱신권 보장 기간을 10년으로 늘리는 방안 등은 논의가 미뤄졌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상가권리금 法 테두리로… ‘임차인의 영업권’ 되찾다
입력 2015-05-13 0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