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 ‘성완종 리스트’ 특별수사팀의 첫 번째 목표는 이완구 전 국무총리라는 관측이 많았다.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메모와 녹취록으로 남긴 의혹 가운데 시점이 가장 가깝고, 당시 정황에 대한 관련자 증언이 잇따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금품 공여자인 성 전 회장이 숨진 상황에서 돈 전달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결정적 증인’이 없었다. 윤승모 전 경남기업 부사장이라는 돈 전달자가 존재하는 홍준표 경남지사의 1억원 수수 의혹 수사와 대비되는 부분이다. 결국 수사팀은 관련자들의 쪼개진 기억과 증거들을 모아 당시 정황을 구성하는 ‘우회로’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검찰, 돈 전달 ‘동선’ 복원 완료=이 전 총리는 2013년 4월 부여·청양 재선거 출마 당시 선거사무소에서 성 전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성 전 회장의 운전기사와 수행비서 등 측근들 입에서 ‘4월 4일, 비타500 박스에 돈을 담아 건넸다’는 요지의 구체적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직접 돈을 전달한 당사자의 증언은 아니었다. 수사팀은 성 전 회장의 다이어리, 하이패스 기록 등을 분석해 동선 복원작업을 한 달 가까이 진행했다. 의혹이 제기된 시점에 성 전 회장이 부여 선거사무소에 방문한 정황을 하나씩 모아가는 방식이었다. 또 지난달 말에는 선거사무소장을 지낸 신모씨가 보관하고 있던 이 전 총리의 일정표를 제출받아 동선이 겹치는 부분을 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 관계자는 이 과정을 “수백만개의 퍼즐을 맞춰가는 과정”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 전 총리 소환 통보는 참고인 진술과 각종 자료를 통해 두 당사자의 동선이 객관적으로 복원됐음을 뜻한다. 선거캠프 자원봉사자였던 한모(61)씨와 이 전 총리의 운전기사였던 윤모(44)씨 진술도 중요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6일 두 사람을 동시에 불러 성 전 회장을 목격한 시점에 대해 집중 조사했다. 한씨는 “성 전 회장을 본 날이 충남도청 개청식(4월 4일) 때였다”고 일관된 진술을 유지했다. 성 전 회장의 발언을 비롯해 당일 사무소 내에서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았던 대화까지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수사팀에 남은 과제는=수사팀이 풀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이 전 총리를 독대했다는 성 전 회장은 숨졌다. 사무실 안에서 실제 3000만원이 건네졌는지 증언할 사람이 없다. 수사팀은 홍 지사와 달리 이 전 총리의 경우 주변인 3명에 대한 조사만 이뤄진 상태에서 소환을 결정했다. 보좌진 조사는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해 곧바로 이 전 총리를 대면 조사키로 한 것이다.
성 전 회장을 수행한 측근들은 최소 2, 3차례씩 진행된 검찰 조사에서 ‘돈을 담았던 것이 비타500 박스였는지 확실하지 않다’고 진술을 흐린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선거캠프에 있었던 전·현직 도지사나 이 전 총리 측근들은 ‘성 회장 방문 사실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어 결정적 증언을 기대하기 힘들다.
한 검찰 간부는 12일 “공여자이자 전달자인 성 전 회장이 사망했기 때문에 수사팀 입장에서는 돈을 직접 조성하는 데 개입했거나 최소한 돈을 목격한 사람의 증언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성 전 회장이 마련했다는 돈의 출처와 이 전 총리가 받았다는 자금이 어디로 흘러들어갔는지 용처를 밝혀내는 것도 과제로 남아 있다.
정현수 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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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5-13 0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