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금개혁 사회적 합의, 선진국은] 英, 토론회 통해 민의 반영… 伊, 노조가 근로자 설득

입력 2015-05-13 02:13
연금 개혁은 어느 나라에서든 실행에 이르기 어렵다. 국민 개개인의 노후 삶의 질과 직결되는 문제여서다. 유럽 국가들은 연금제도에 변화를 줄 때마다 고유의 사회적 합의 과정을 거쳤다. 정창률 단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2일 새정치민주연합 주최로 열린 ‘국민연금 개혁 토론회’에서 영국과 이탈리아의 사회적 합의 경험을 소개했다.

◇영국, 전문가 의견과 국민 합의 따라=강한 사적연금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은 2007년부터 공적연금을 강화하는 조치를 이어가고 있다. 이를 추진한 건 1997년 집권한 노동당 정권과 토니 블레어 전 총리다. 노동당은 집권 초기 사적연금 비중을 높이는 정책을 추진했으나 잇따라 실패했다. 그러자 2002년 연금위원회를 독립 기관으로 설치하고 장기 계획을 짜도록 한다. 위원회는 최고의 연금 전문가 3명으로 구성했다.

위원회는 2005년까지 세 차례 보고서를 제출했다. 노동당의 연금정책에 상당한 문제가 있으며 공적연금에 대한 지출을 높이라는 게 핵심 내용이었다. 블레어 정권은 당의 정책과 다른 보고서를 전격 수용했다. 정 교수는 “영국의 연금 개혁 과정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영국 정부는 2006년 상반기 각종 전문가 토론회와 지역 토론회, 대국민 토론회 등을 실시했다. 이른바 ‘대국민 자문’ 과정을 거친 것이다. 국민의 의견을 반영해 2006년 5월 연금 개혁에 대한 백서를 발간했다. 의회는 2007년 관련법을 고쳤다. 법 개정은 이듬해와 2011년에도 이어져 국민이 합의한 내용은 거의 모두 실제 개혁으로 이행됐다.

◇이탈리아, 노조가 근로자 설득=이탈리아는 과거에 연금으로 인한 재정적자 문제가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했다. 1990년대 초 재정적자가 국내총생산(GDP)의 100%를 넘고 마스트리히트 조약 이행이 어렵게 되자 강도 높은 연금 개혁을 실시했다. 1995년 명목 확정기여 방식(NDC)을 도입했다. 자신이 낸 보험료에 경제성장률, 금리에 따른 이자 등을 더해 연금을 타는 방식이다. ‘낸 것보다 더 받던’ 연금을 사실상 ‘낸 만큼 받는’ 구조로 바꿨다. 평균 연금 수령액이 높았던 이탈리아에서는 NDC 도입으로 보험료율이 32%까지 올라갔다.

정 교수는 이탈리아가 NDC 도입에 합의한 방식에 주목했다. 개혁안은 정부가 주도해 작성했지만 근로자를 설득한 건 노동조합이었다. 노조는 개혁안 작성 과정에 깊이 개입한 뒤 노사정 협약 체결 전후에 근로자 투표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노조는 집회를 열어 NDC의 필요성을 설명했다.

이에 비춰볼 때 최근 우리의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은 사실상 사회적 합의가 생략됐다. 정 교수는 “보험료율과 급여율 등만이 쟁점으로 좁혀지면서 재정 개선을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논의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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