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한국인의 인식 속에 호주는 코알라와 캥거루, 오페라하우스가 전부인 나라였다. 호주인들에게도 한국은 유학생과 관광객들이 많이 오는 동북아시아의 중견국가일 뿐이었다. 호주의 싱크탱크 로위연구소가 지난해 성인 11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가별 호감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100도를 가장 호감 있는 상태로 봤을 때 한국은 59도로 일본 67도, 중국 60도에 이어 동북아 3개국 중 꼴찌였다. 긴 협상 끝에 지난해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됐고, 12월 12일 발효됐다. FTA 발효 5개월을 맞아 FTA가 양국에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점검해본다.
지난달 30일 오전 7시 호주 시드니 달링하버 근처에 위치한 시드니피쉬마켓. 30분 전부터 시작된 경매가 한창이었다. 경매에 참여한 수산물 도·소매업자 등이 천장에 매달린 대형 화면에 새로운 품목과 가격이 나타날 때마다 빠르게 손을 움직여 경매 시스템 버튼을 눌렀다. 이곳에선 하루 50t가량의 수산물이 거래된다. 한·호주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면서 한국 소비자들도 이곳에서 나오는 호주산 바닷가재 등을 더욱 저렴한 가격에 맛볼 수 있게 됐다.
다음 날 찾은 시드니 시내 대형마트엔 치즈와 버터 등 다양한 호주산 유제품이 즐비하게 진열돼 명실상부한 축산·낙농국가임을 느끼게 했다. FTA 체결로 호주산 유제품과 과일 등의 가격도 낮아졌다. 호주산 체리는 24%의 관세가 철폐되면서 올해 초부터 판매량이 급증했다. 호주산 쇠고기에 대한 관세는 40%에서 매년 2∼3% 포인트 낮아진다.
하지만 호주 소비자들이 느끼는 체감 정도는 우리와 온도차가 났다. 호주가 한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주요 품목 중 일반 소비자가 가격 인하를 체감할 수 있는 것은 아직 자동차 정도여서다. 관세 5%가 즉시 철폐됐지만 쇠고기나 과일처럼 소비자들이 수시로 구매하는 품목은 아니다. 시드니 시내 대형마트에서 만난 한 시민은 “FTA로 한국산 자동차 관세가 철폐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면서 “한국 자동차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농축산물 시장 개방에 대한 반발이 있었듯 호주에서도 자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우려와 업계의 반발이 있었다. 호주는 자동차 산업 충격을 줄이기 위해 시장의 85%(중소형 차량)는 관세를 즉시 철폐하고 15%(대형 차량)는 점진적으로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취재지원으로 호주 캔버라 외교통상부에서 만난 잰 애덤스 외교통상부 차관보 겸 한·호주 FTA 수석대표는 “소비자에게 어떤 면에서 이익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호주 내에서도 관심이 높다”면서 “FTA를 통한 경제협력으로 양국의 관계를 강화시킬 수 있으며 특히 서로에 대한 우호적인 시각을 가지게 돼 문화·심리적으로 가까워지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호주 FTA는 양국 간 다양한 산업을 아우르는 포괄적 협정으로 상품 투자 서비스 인적교류 등 광범위한 분야를 포함한다. 호주의 8번째 FTA 상대국인 한국은 호주의 3대 수출시장이자 4대 교역국이다.
한국과 호주가 이번 FTA에서 새롭게 주목하는 분야는 금융 및 법률 서비스, 스마트 시티와 TV·영화산업 협력이다. 호주 증권투자위원회(ASIC) 제라드 피츠패트릭 수석위원은 “한·호주 FTA 체결 내용 중에 금융 서비스 분야가 포함돼 있어 양국 정부와 기업이 구체적인 사항을 조율하기 위해 대화하고 있다”면서 “FTA뿐만 아니라 회원국 간 펀드를 상호 교차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아시아펀드패스포트(ARFP) 도입 등을 통해 양국이 투자 선택의 폭을 넓히고 위험을 줄일 수 있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FTA를 계기로 양국은 정보과학(IT) 기술로 인간의 삶을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만드는 스마트 시티에 대한 공동연구도 활발하게 추진하고 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대(UNSW)에서 스마트 시티 연구단지를 이끌고 있는 한정훈 교수는 “한국과 호주는 도시화율이 높아 스마트 시티 기술의 개발 및 연구가 더욱 중요한 과제”라면서 “호주는 기술연구, 한국은 상업화에 두각을 나타내는 특성이 있어 이를 접목하기 위해 삼성, SK C&C 등의 한국 기업과 논의 중”이라고 말했다.
호주는 농축산품, 액화천연가스(LNG)와 같은 에너지 분야 등에서 한국을 주요 수출 시장으로 보고 있다. 호주 통상위원회(AUSTRADE) 마크 덜웰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호주가 다양한 국가와 FTA를 체결하는 것과 관련해 “호주는 경제적인 면에서 흥미진진한 시기를 겪고 있다”면서 “예전에는 호주로의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광산의 경제적 효과를 많이 이야기했지만 철광석 가격 하락 등으로 자원개발시장 수익이 낮아지면서 새로운 성장동력의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시드니·캔버라=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韓·濠 FTA 발효 5개월-르포] 새로운 성장동력 찾는 호주 “한국은 기회의 땅, 한국차 구매 계획”
입력 2015-05-13 0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