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룡산은 계람산(鷄藍山), 옹산(翁山), 서악(西嶽), 중악(中嶽), 계악(鷄嶽) 등 여러 가지 다른 이름을 갖고 있다. 중국 당나라 장초회(張楚會)의 ‘한원(翰苑)’ 백제조에 ‘계룡동치’ ‘국동유계람산’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계람산’이라는 명칭은 계곡의 물이 쪽빛같이 푸른 데서 나왔다.
‘계룡’이라는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천황봉(845m)을 중심으로 여러 개의 봉우리가 이어진 모습이 닭벼슬을 쓴 형상이다.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금남정맥의 끝 부분에 위치한 계룡산은 주봉 외에도 관음봉, 연천봉, 삼불봉 등 28개의 크고 작은 봉우리와 7개의 계곡으로 이뤄져 있다. 대전, 충남 계룡시·공주시에 걸쳐 있으며 1968년 12월 31일 지리산에 이어 두 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통일신라 때에는 묘향, 지리, 태백, 팔공산과 함께 ‘신라 5악’ 중 서악이었고 조선시대에는 묘향산의 상악단, 지리산의 하악단과 함께 중악단 역할을 했다. 태조 이성계는 계룡산으로 천도하기 위해 궁궐 공사를 시작했으나 조운(漕運)의 불편 등 왕도로 적합하지 않다는 결론에 따라 중단했다. 현재 부남리에 초석으로 다듬어진 암석 94개가 남아 있다. 이곳에는 동문거리, 서문거리 등의 지명과 함께 신도 역사의 인부들이 일을 마치고 짚신을 털어 봉우리가 됐다는 신터리봉 등이 있다.
많은 사람들이 계룡산을 찾을 때면 어떤 지점을 기점 또는 종점으로 하더라도 갑사(甲寺)를 포함시킨다. 고등학교 때 국어 교과서에 실린 ‘갑사로 가는 길’(이상보)이라는 수필이 아니더라도 그만큼 고찰다운 깊이가 있고 계룡의 격에 어울리는 까닭이다.
이번 트레킹은 비교적 짧은 코스다. 신원사(新元寺)에서 출발해 갑사로 이어진다. 신원사는 동학사와 갑사에 비해 덜 알려져 있지만 들머리로는 안성맞춤이다. 상대적으로 사람의 발길이 뜸해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연천봉 능선을 사이에 두고 초보자에게도 권할 만한 대중적인 난이도다. 이 코스를 반대로 올라보면 금세 알 수 있다. 갑사에서 연천봉 능선으로 이어진 계곡길은 조릿대와 소나무 등이 지루함을 달래 주지만 바위계단으로 시작해 숨이 꼴딱꼴딱 넘어가는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신원사에서 출발해 1시간30분 정도면 연천봉과 문필봉 사이의 안부인 능선에 닿는다. 이곳이 연천봉 고개(672m)다. 여기서 서쪽으로 10분만 가면 연천봉 정상(739m)이다. 가풀막에 힘을 많이 들였더라도 반드시 들러봐야 할 곳이다. 우선 암봉이라 경치가 시원하게 트인다. 왼쪽으로는 자연성능이 길게 내달음치고 오른쪽으로는 관음봉이 우뚝 솟아 있다. 한창 녹음이 우거져 초록 물감으로 산을 그려 놓은 듯하다. 새순 돋은 나무마다 묻어 있는 초록의 물결은 가히 장관이다. 연천봉은 서쪽으로도 시원한 경관을 자랑한다. 연천봉에서 본 낙조는 계룡 8경에 속할 정도로 백미에 꼽힌다.
다시 안부로 돌아와 반대편 계곡으로 내려서면 갑사로 이어진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가노라면 이쪽을 올라오는 코스로 정하지 않은 것이 다행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1시간10분 정도면 갑사에 닿는다. 산행이 짧게 느껴진다면 연천봉에서 능선을 따라 동쪽으로 종주해 관음봉에서 경치를 감상하고 다시 연천봉고개로 돌아와도 된다. 관음봉 팔각정 전망대에서 본 자연성릉 역시 계룡산의 하이라이트로 꼽힌다. 갑사 도착하기 직전에 있는 ‘명월담’의 폭포도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계룡산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힘들고 긴 코스는 동학사주차장에서 은선폭포-관음봉고개-연천봉-관음봉-삼불봉-남매탑-동학사로 산을 한 바퀴 도는 코스다. 11.8㎞로 6∼7시간이 소요된다. 다음으로 수통골주차장에서 도덕봉-가리울삼거리-자타고개-금수봉삼거리-금수봉-빈계산-수통골의 9㎞(5시간 30분) 코스다. 갑사에서 원효대-연천봉-관음봉-삼불봉-남매탑-동학사에 이르는 10.2㎞(6시간) 코스도 상대적으로 어려운 코스에 속한다.
공주=글·사진 남호철 선임기자
hcnam@kmib.co.kr